경제·금융

과소비병은 불경기도 없나(사설)

과소비병이 만연하고 있다. 우선 쓰고 보자, 큰 것이 좋다, 외제면 더욱 좋다는 소비행태가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마치 「소비가 미덕」인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다.「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외국인들의 해묵은 비아냥쯤은 아랑곳 하지 않는 듯 우리는 샴페인을 폭음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요즘같이 위기국면을 맞아 난국이니 불황이니 해서 경제가 중병을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장률을 웃도는 과소비 열풍이 유행병처럼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그것도 고속득층에서 저소득층으로, 40∼50대에서 20∼30대로까지 번져가고 있다. 모두가 과소비 망령, 곧 한국병에 감염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는 저축률을 갈수록 떨어뜨리고 물가와 임금상승을 자극하고 금리하락을 가로 막는다. 경상수지 적자폭을 더욱 넓히고 있다. 그야 말로 과소비병에 경제가 열병을 앓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가계소비동향」은 새삼스럽지 않으나 병세가 깊어져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소비가 악덕인 것은 아니다. 건전한 소비, 분수에 맞는 소비는 경기를 부추기게 된다. 소비가 투자와 생산활동의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과시소비에 있다. 부유층 지도층의 과시적 소비에 저소득의 모방소비, 정부 정책에 대한 실망소비 또 허세 정책에 자극을 받은 충동소비가 문제인 것이다. ○성장률 앞지른 소비 증가 한은의 자료에 나타난 가계소비 특징이 그것을 잘 설명해 준다. 첫째, 경기 둔화에도 불구하고 소비증가는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불경기때는 소비도 줄어드는게 상식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불황이 깊어 가는 데도 가계소비는 계속해서 증가했다. 끝내는 지난해를 기점으로 GNP성장률을 뛰어 넘었다. 소비지출 증가는 당연히 저축률 감소로 이어졌다. 지난해 3·4분기에 31·9%이던 도시 가계저축률이 올해 2·4분기엔 26·3%로 떨어졌다. 한계소비성향도 1백2%에 이르렀다. 씀씀이가 헤프다 못해 소득증가분을 넘게 써버린 것이다. ○유행병처럼 전계층 확산 둘째, 유흥 오락 레저 서비스 소비가 급증하고 있으며 외제선호의식이 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스키장 골프장 경마장 입장객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어 가계소비지출중 이들 유흥 오락성 소비의 비중이 80년 27·1%에서 지난 2·4분기엔 47·1%로 높아졌다. 외국산 사치성 소비재의 수입도 크게 늘어나는 추세여서 증가율이 지난해 2·4분기엔 38·8%에 이르렀다. 따라서 가계 소비재화에서 수입품이 차지하는 비중도 90년 6·9%에서 올 상반기에 11·3%로 높아졌다. 셋째, 소비패턴이 고급화 대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천5백㏄이상 승용차 판매비중이 43%(92년 27·2%), 18인치 이상 컬러TV 비중이 65·1%에 이르렀다. 될 수 있는대로 큰 것, 비싼 것, 외제면 더욱 좋아하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넷째, 과소비 행태가 전 계층으로 번지고 있는 점이다. 고소득층이나 직장의 관리층 뿐만 아니라 비교적 소득수준이 낮은 20∼30대 젊은층에까지 분수에 넘치는 소비성향을 보이고 있다. 집은 없어도 차부터 산다. 그것도 고급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게 보통이다. 40∼50대 가구주의 승용차 보유율보다 높다. 과소비 병의 원인은 소득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임금상승이 구매력을 증대시킨 것이다. 저소득층 근로자의 소득증가 속도가 고소득층의 그것보다 빨라진 것이 전 계층 소비 확산의 원인일 것이다. 거기다가 신용카드가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소비심리를 부추겼다. 지난해의 신용카드 구매실적 49조원이 입증해 준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93·2%나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가 부추긴 한국병 그러나 그것만 탓할 수 없다. 소비를 조장한 정부의 책임이 더 크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터에 과속 개방으로 외제 수입 봇물을 이뤘다. 이어 대책없는 세계화가 과소비형 해외여행을 촉발시켰다. 소득 1만달러시대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이니 해서 선진국 바람을 불어 넣었다. 골병 들줄 모르고 허파에 바람을 넣고 허장성세를 부추겼던 것이다. 그 이전 금융실명제 실시때부터 소비병은 예견되었다. 실명제와 금융소득종합과세에 따른 자금의 노출과 세금을 피해 쓰고 보자는 소비심리가 발동되리라는 것쯤은 정부만 모르고 국민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소비가 미덕」이라며 치적 과시를 하던 군사정권의 구태를 재연하는 듯 했던 것이다. 소비병이란 쉽게 고쳐지는 병이 아니다. 씀씀이를 늘리기는 쉬워도 줄이기는 어려운 법인데 이미 소비의 단맛에 길들여진 후에 절약의 쓴약을 삼키기란 쉽지않다. 그래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과제다. 그렇다고 강제로는 되지 않는다.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지도층이 솔선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 정부의 허풍기부터 빼야 한다. 긴축재정, 정부기구와 인원축소부터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 경제의 안정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물가 임금 금리를 낮추는 작업을 강력히 추진할 때 국민들의 거품기도 따라서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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