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교사다. 그런대로 괜찮은 동네에서, 괜찮은 차를 몰고 산다. 남들 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한 중산층이다. 하지만 A는 고민이 많다. 집이 자기 집도, 전세도 아니다. 월세다. 수년 전 부인이 몸이 아파 병원생활을 하는 바람에 전세보증금을 털어 충당했다. 혹시 학교에서 구조조정이라도 당하면 앞으로 어떻게 사나 하는 생각을 하면 잠이 안 온다.
B는 몇 년전 회사에서 잘렸다.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구조조정을 하는 통에 갑작스레 그만두게 됐다. 그 때 많은 생각을 했다. 뭔가 전문기술, 내 사업이 필요함을 느꼈다. 쌈짓돈까지 털어 외국으로 요리유학을 떠났다. 어렵게 코스를 마치고 올해 초 귀국했지만 갈 데가 없다. 나이가 많고 경력이 없다는 이유다. 봉급을 작게 받겠다고 해도 쓰겠다는 식당이 없다.
중산층이 줄고 있다. 아니 많은 중산층들이 몰락하고 있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산층(중간소득의 50~150%)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1990년 75.4%에서 2010년 67.5%로 7.9%포인트가 줄었다. 반면 하위층(중간소득의 50% 미만)은 같은 기간 7.1%에서 12.5%로 5.4%포인트 늘었다. 상위층도 같은 기간 17.5%에서 20.0%로 2.5%포인트 늘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조사결과는 더 극적이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3년간 중산층은 7.6%포인트가 줄고, 저소득층은 4.9%포인트가 늘었다고 분석했다.
중산층들이 몰락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97년 외환위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중산층은 열린 계층이며 상대적으로 균일한 계층이었다. 계층상승이 가능한 공교육 시스템, 상대적으로 열린 취업기회, 내집 마련 등은 모두에게 가능한 기회로 다가왔다. 비록 소득격차가 있다 해도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교육과 취업을 통해 따라잡는 것이 가능하다는 기대와 희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와 2002년 카드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중산층은 열린 계층에서 닫힌 계층으로, 균일한 계층에서 다수는 추락하고 소수만 올라서는 분열계층으로 변모했다. 집값 급등,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 고용의 질과 양 추락 등으로 중산층은 계층상승이 사실상 불가능한 닫힌 계층으로 전락했다.
이에 대해 구해근 하와이대 사회학과 교수는 중산층의 질적 변화에 주목한다. 구 교수는 "현재 한국사회의 중산층은 과거 경제 개발기에 존재했던 비교적 동질적이고 유동적인 사회계층에서 점차 내부적으로 분화하면서 사회이동의 통로가 막힌 계층집단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회안정 세력이 아니라 좌절감과 불안이 고조되고 정치적으로 예측하기 힘든 사회세력으로 변하는 중"이라고 분석했다. 중산층이 사회안정세력이 아니라 불안정 세력으로 변해간다는 얘기다. 이 같은 중산층의 변모는 지난해 10월26일 서울시장 선거에서 극적으로 표출됐다.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 20대의 69.3%, 30대의 75.8%, 40대의 66.8%가 야당후보를 지지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중산층으로 추정된다.
중산층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중산층의 붕괴는 곧바로 사회적 불안과 계층갈등으로 연결된다. 경제적으로도 중산층은 중요한 소비계층이다. 중산층 붕괴가 곧바로 내수산업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과 같은 국제경제 환경에서 개방과 국제화, 시장에서의 경쟁 심화 등은 우리 경제의 성장과 활력유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는 정책적 선택이다. 그러나 경제성장률(GDP), 일인당 국민소득은 평균개념이다. 우리 사회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분열과 갈등의 씨앗은 보여주지 않는다. 중산층을 다시 열린 계층으로, 희망을 갖는 계층으로 만드는 것은 사회통합과 우리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