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법무팀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의 내부비리 폭로 파문 이후 국내 주요 기업들이 사내변호사 채용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이는 기업들이 올 사내변호사 채용 자체를 중단하거나 채용해도 기존보다 규모를 축소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일부 기업은 기존 사내변호사에 대해서도 감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예상된다.
12일 법조계와 재계 등에 따르면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변호사협회 소속 변호사들이 최근 가진 비공식 간담회 자리에서 국내 변호사를 채용하는 방안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간담회에 참석했던 A변호사는 “기업 측에서 ‘사내변호사 출신이 기업의 내부기밀을 폭로하면 어느 기업이 사내변호사를 믿고 일을 맡길 수 있겠느냐’며 강하게 항의했다”며 “국내 변호사를 채용하는 게 더 이상 불가능한 게 아니냐는 의견을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실상 국내 변호사를 더 이상 채용할 수 없다는 취지로 이해했다”고 덧붙였다. B변호사는 “일부 기업들은 기존 사내변호사도 감축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는 말을 전해들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올해 졸업하는 사법연수원생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법연수생은 매년 평균 40~50여명이 기업 사내변호사로 진출하고 있고 최근 5년간 삼성ㆍLG 등에 204명이 진출했다.
조근호 사법연수원 부원장은 “(김용철 파문이) 사법연수원 졸업생들의 진로에 상당 부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재 기업 내부 분위기는 (사내변호사 채용을 확대해달라는) 하소연이 먹히지 않을 정도로 악화돼 있다”고 걱정했다.
조 부원장은 그러나 “사내변호사는 기업의 준법과 투명경영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인 만큼 파문이 장기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판ㆍ검사 출신 전관변호사들의 기업행에도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 지난 2003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판ㆍ검사 출신 변호사 51명이 삼성ㆍ현대차 등 대기업에 재취업했다. 이 가운데 42명은 검사 출신으로 삼성 10명, 현대 4명, 두산·SK·LG에 각각 3명, 한화 2명, 기타 17명 등이었다.
하지만 ‘김용철 파문’ 이후 이 같은 전관 출신 변호사들의 기업행은 사실상 불가능할 전망이다. 대기업의 한 임원은 “기업들이 이번 사태에 상당한 충격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전관 출신 변호사 영입에 더욱 조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기업들도 과거보다 훨씬 투명해진 만큼 전관 출신 변호사에 대한 수요는 갈수록 급감할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판ㆍ검사 출신 전관변호사에 대한 영입중단 방침을 내비쳤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태로 사내변호사 전체가 매도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경계하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 사내변호사포럼(IHFC) 회장을 맡고 있는 NHN의 이석우 경영정책담당 부사장은 “이번 사태는 (김용철 변호사) 개인의 문제인 만큼 사내변호사 전체가 매도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