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포럼]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근로시간 단축

백필규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죄수의 딜레마'라는 말이 있다. 공범 혐의로 잡혀온 두 사람이 서로 격리돼 취조를 받는데 어느 한쪽이 범죄를 자백하면 그 사람은 형이 경감되고 자백하지 않은 사람은 가중처벌을 받게 되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둘 다 자백하지 않으면 범죄 혐의를 입증하지 못해 석방될 수 있는데 이기적 특성을 갖는 개인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 결과 두 사람 모두 자백해 중형을 받는다.


이와 비슷한 딜레마가 근로시간 단축을 둘러싼 노사 간 줄다리기에서도 나타났다. 국회 노사정 소위는 주중 연장근로 12시간, 휴일근로 16시간을 포함해 주 68시간까지 허용되는 현재의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법안을 마련하기 위해 논의했지만 결국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관련기사



그 결과는 무엇인가. 법이 바뀌지 않았으니 최대 주 68시간 근로는 그대로 가능하겠지만 이전에는 연장근로시간에 포함되지 않았던 휴일근로가 최근의 판례 변경으로 연장근로시간에 포함되면서 중복할증임금이 적용돼 연장근로시간이 많은 기업의 임금부담이 상당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늘어난 임금부담을 감당해내기 어렵다면 기업은 근로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악의 상황은 근로시간에 관해 조만간 내려질 대법원 판결이 휴일근로를 포함해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면 그 이상의 근로를 시키는 기업주들은 모두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근로자들은 살만해지는가. 근로시간이 단축돼도 고용과 임금이 유지된다면 살만해질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여력이 충분한 대기업이라면 모르겠지만 중소기업 중 근로시간이 단축돼도 임금은 그대로 줄 수 있는 기업이 많지 않다. 근로시간이 단축된 만큼 임금도 적게 줄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열악한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이 더욱 열악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임금만이 아니다. 여력도 노조도 없는 중소기업은 고용도 안정돼 있지 않다. 납기를 못 맞추고 임금부담이 늘어나 경쟁력이 약해지면 고용도 불안해지는 것이 중소기업의 냉정한 현실이다.

노사 대표가 합의하면 문제를 풀 수 있는데 각자의 이익을 추구해 결국 모두 큰 피해를 피할 수 없는 죄수의 딜레마적 상황을 노사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노사는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노사 대표자가 자신이 속한 이해집단의 요구에 밀려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공정한 중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 점에서 노사정 지원단이 제시한 중재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재안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법정근로시간 외에 노사가 합의하면 6개월간 주 8시간까지 '특별근로시간'을 허용하는 방안이고 또 하나는 52시간 이상 연장근로를 할 수 없도록 하되 2017년 말까지는 근로시간 범위를 초과해도 위법을 면해주는 '면벌 조항'을 도입하는 방안이다. 물론 이러한 중재안조차 당장 시행하기에는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충분하지 않다. 특히 근로시간 단축 외에도 통상임금부담 증가, 정년연장 등 기업 부담요인이 중첩된 상황이어서 근로시간 단축의 충격을 줄이고 충분한 준비를 통해 연착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일정 유예기간은 필수불가결하다. 물론 이 기간 동안 우수인력들이 오고 싶어 하는 중소기업을 만들고 선진국 수준의 삶의 질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근로시간 단축의 노력은 당연히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우리나라 사업체 수의 99%와 종업원 수의 88%를 점하는 중소기업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노사는 이제 한발씩 양보해서 손을 잡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