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날치기 국회/이상수 국회의원(로터리)

국회가 또다시 날치기와 몸싸움으로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국회의장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해당 상임위원회의 심의도 거치지 않은채 본회의에 직권상정해 야당이 분명히 반대하고 있는데도 반대의견이 없다며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안기부법 개정안은 해당 상임위인 정보위원회에서 정부의 제안설명이나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는 물론 위원들의 찬반토론도 없이 날치기 통과됐다. 그리고 그 처리과정에 관한 속기록이 변조됐다는 시비까지 불러일으키며 상정됐으나 여야간의 몸싸움으로 끝내 통과가 저지됐다. 이러한 국회의 파행상을 보면서 국회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심한 무력감과 함께 자괴감을 갖지 않을수 없다. 파행의 원인을 따져보면 대화와 타협의 부재, 다수결원칙의 남용, 상호신뢰 부족 등 세가지로 압축될 수 있겠다. 흔히 정치는 최선을 추구하되 차선을 만족하는 예술이라고 표현된다. 타협을 통한 이해의 조정이 정치의 요체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자신들이 낸 안은 무조건 통과되어야 한다는 낡은 경험에 안주하고 있고, 야당은 자신들의 입장에 맞지 않는다며 실력저지의 배수진을 치고 맞서고 있다. 이렇게 대화와 타협이 없이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는 논리가 국회을 지배하는 한 파행의 불씨는 사라질 수가 없다. 둘째 다수결의 원칙이 무조건 언제나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도 문제다. 다수결의 원칙은 민주주의의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원리다. 따라서 우선 무엇을 위한 다수결이냐는 의미에는 목적상의 제한을 받는다. 민주주의에 반하는 내용을 다수결의 이름으로 통과시킬 수는 없다. 또한 다수결의 원칙은 절차상의 제한도 받는다. 소수자의 의견이 충분히 개진되고 보호되는 관용의 분위기가 전제될 때만이 다수결의 원칙은 정당성을 갖는다. 나아가 소수자의 의견도 여론의 지지를 받을 경우 다수자의 의견으로도 존종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려 있어야 한다. 민주정치에 있어서 권력행사의 정당성은 선거 때는 투표로, 평상시는 여론으로 검증돼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로 여야간 불신의 장벽이 무너져야 한다. 충분한 토론을 거친후 표결에 부치기로 약속하고서도 그 약속이 사소한 이유로 파기되면서 생기는 불신의 경험은 안건의 상정자체를 거부하고 그에 앞서 토론없이 통과시키려는 파행에의 유혹을 배태시킨다. 우리 국회가 절차상 정당성이라도 확보할 수 있는 날이 언제나 올 것인지, 그 꿈과 꿈의 실현에 대한 믿음이 우리 모두의 마음을 지배할 때 우리 정치의 민주화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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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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