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리빙 앤 조이] 달력인심 옛말… 개성만점 '귀하신 몸'

■ 2010년 달력 장만하셨습니까?<br>중기 제작포기로 구하기 힘들어<br>무한도전·선덕여왕 달력 등 인기<br>치킨업계 아이돌 마케팅 '상종가'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끝나가면서 달력의 마지막 장인 12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아쉬움 가득한 시간이었지만 지난 한 해의 묵은 먼지와 추억들은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할 시간이다. 이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달력이다. 11장의 친구들을 먼저 떠나 보내고 얄팍해진 몸으로 홀로 거실 벽을 지키던 묵은 달력을 떼내고 두툼한 새해 달력을 거는 순간 비로소 새해가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디지털기기의 대중화와 경기불황의 여파로 달력의 모습과 기능도 변화하고 있다. ◇불황ㆍ디지털화… 구하기 힘들어져
주부 한미숙(37)씨는 최근 거실에 걸어놓을 새해 달력을 아직 정하지 못해 고민에 빠졌다. 예전 같으면 남편이 직장에서 받아온 여러 개의 달력 중 '못생긴' 달력은 추려내고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예쁜 달력만 고르고 골라 걸었지만 올핸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 지난해부터 시작된 경기불황 여파로 그동안 기업체들이 공짜로 나눠줬던 새해 달력이 크게 줄어들면서 맘에 드는 달력을 고를 수 있는 선택의 폭도 함께 좁아졌다. 이런 분위기는 충무로 인쇄골목에서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대호카렌다의 조순상 실장은 "보통 12월은 한창 밀려든 달력 주문으로 정신 없이 바쁘게 일할 시기이지만 경기불황으로 주문량이 크게 줄어든 탓에 올해는 한가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세창카렌다 관계자는 "최근 휴대폰을 비롯해 달력 기능까지 겸비한 각종 디지털기기가 대중화되면서 달력이 점차 외면받고 있는데다 경기침체로 기업들의 달력 주문마저 크게 줄면서 올해 달력 인쇄량도 지난해보다 20~30% 가량 감소했다"고 말했다. 특히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중소기업들의 경우 아예 달력 제작을 포기해 달력 구하기가 더욱 힘들다. 김상만 문덕카렌다 대표는 "그동안 당연히 공짜로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온 달력을 앞으로는 돈 주고 사야 할 때가 올 것"이라며 "최근 들어 본인이 사용하거나 선물하기 위해 달력을 소량 구매하는 개인고객들도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서울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의 한 관계자는 "과거 대량으로 만들어 불특정 다수에게 나눠주던 기업들의 달력 제작 문화가 최근엔 소수의 VIP 고객만을 겨냥해 제작수량은 줄이되 품질은 고급화하는 방식으로 점차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달력 인쇄업체들의 가장 큰 손으로 꼽히는 은행업계는 최근 경비절감 차원에서 내년도 달력 주문을 줄였다. 기업은행은 내년도 달력을 2009년도 93만부보다 5만부 가량 줄었든 88만부를 제작했다. 달력 제작경비 역시 지난해보다 약 10% 줄어든 금액이 배정됐다. 산업은행도 지난해 21만5,000부 가량 찍었던 달력과 수첩을 올해는 20만부 수준으로 줄였으며 관련 예산도 삭감했다. 우리은행 역시 내년도 달력 제작부수와 관련 예산을 지난해보다 10~20% 축소했으며 달력 종류도 기존 4종에서 2종으로 줄였다. ◇이젠 달력도 개성 시대
온라인몰을 중심으로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달력을 직접 구매하려는 소비자들도 크게 늘고 있다. 인터파크는 이달들어 15일까지 달력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3% 급증했으며 롯데닷컴은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3일까지 '달력'을 키워드로 검색한 고객이 2주 전보다 4.5배나 증가했다. 특히 인기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 등 유명인의 모습을 담은 달력은 인기 상종가다. MBC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 출연진이 만든 새해 달력은 4일 예약판매를 시작한 이후 불티나게 팔려나가며 현재 40만부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스타 박지성 선수가 소속된 세계적인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2010년 캘린더'도 최근 축구팬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으며 피겨요정 김연아 선수의 모습이 담긴 새해 캘린더 역시 날개 돋친 듯 판매되고 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는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과 재단법인 아름다운 봉하가 공동 제작한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하는 2010년 달력'이 지난달 25일 판매개시 하루 만에 1,000부가 매진된 데 이어 2차 판매량 3,000부도 4일 만에 동났다. 알라딘 관계자는 "현재 달력의 물량 공급이 주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계속 예약주문 형태로만 판매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기 드라마 '선덕여왕'의 명장면을 모아놓은 캘린더와 락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캘린더,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 '1박2일'의 국민견으로 떠오른 상근이의 포토 캘린더 등도 반응이 좋다. 이 밖에 가족이나 친구의 사진과 메시지를 넣어 원하는 대로 만들어 사용할 수 있는 'DIY 달력'과 달력에 꽃을 꽂을 수 있는 '화병 달력', 통나무 그대로의 느낌을 살린 '통나무 만년달력' 등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 가능한 독특한 디자인의 달력도 인기다. ◇달력의 마케팅 가치 재발견
디지털기기의 대중화와 경기불황의 여파로 달력수요가 점차 감소하고 있지만 달력의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보는 업체나 업종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치킨업계. 최근 국내 치킨 브랜드들은 잇달아 자사 광고모델로 활동중인 유명 아이돌그룹의 이미지 달력을 판촉물로 내걸고 있다. 지난해 25만부의 '소녀시대' 달력을 만들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굽네치킨은 올해 달력 주문을 30만부로 늘렸다. 지난 1일부터 치킨 1마리 이상 주문고객을 대상으로 달력을 증정한 결과 열흘만에 제작 물량이 모두 매진됐으며 이에 힘입어 12월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25% 가량 상승했다. 동남아시아 현지의 소녀시대 팬클럽은 '소녀시대 달력'을 구하기 위해 치킨 200마리를 구매, 치킨은 국내 요양원에 기부하고 달력 200부만 받아가는 진풍경까지 연출됐다. BBQ는 지난 15일부터 '원더걸스 달력' 35만부를 만들어 고객들에게 나눠주고 있으며 BHC도 아이돌그룹 빅뱅의 대성을 모델로 한 달력 20만부를 제작ㆍ배포하고 있다. 네네치킨은 이달 초부터 개그맨 유재석과 여성그룹 티아라의 이미지를 담은 새해 달력을 선보였으며 구어조은닭도 인기 걸그룹 '카라 달력'을 만들어 판촉물로 활용중이다. BBQ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젊은층은 달력도 개성대로 골라쓰다 보니 갖고 싶은 달력은 없어서 못 구한다"며 "인기 아이돌그룹의 달력을 얻기 위해 치킨을 구매하는 고객들이 늘면서 매출상승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외식업체들은 각종 할인쿠폰이 부착된 캘린더를 앞세워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T.G.I 프라이데이스는 5만원 이상 결제고객 중 OK캐쉬백 포인트 적립 후 당첨결과에 따라 총 1만명을 대상으로 새해 쿠폰 캘린더를 배포한다. 미스터피자는 프리미엄 피자 15% 할인과 콜라 무료 쿠폰 등의 혜택이 들어있는 캘린더를, 배스킨라빈스는 1만5,000원 이상 구매 시 '스케줄 캘린더'를 각각 증정한다. 스무디킹과 베니건스, 빕스 등도 일부 세트메뉴 주문 고객을 대상으로 새해 달력을 무료로 준다. T.G.I 프라이데이스 관계자는 "특히 외식업체의 쿠폰 달력 마케팅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 고객의 재방문을 유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달력의 숨은 가치가 새롭게 발견되면서 달력 제작을 중단했다가 다시 만드는 곳도 등장했다. 인터컨티넨탈호텔은 지난해 경기불황과 맞물려 달력의 필요성에 회의론이 고개를 들면서 달력을 만들지 않았으나 고객들의 요청이 쇄도해 올해는 달력을 제작해 VIP 고객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경우 그동안 다이어리만 만들어 배포하다가 지난해부터는 달력도 함께 제작해 VIP 고객 및 법인고객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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