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물러설곳 없다" 끝까지 버티기

"물러설곳 없다" 끝까지 버티기정부 "금융개혁 후퇴불가"협상카드에 한계 노조 "구체성과물 없으면 자멸" 강경 정부와 금융노조간의 얽힌 실타래가 좀처럼 풀리지 않으면서 파업이 현실로 다가왔다. 주요 쟁점들마다 접점을 찾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서로가 뚜렸하게 물러설 명분을 찾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와 금융노조가 이번에 밀리면 영원히 밀린다는 입장차이가 불구덩이(파업)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모습이다. 협상은 숨가쁘게 진행됐지만 개별 쟁점에 대한 원론적 접근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은 이유다. 양측, 특히 정부는 마지막까지 대화의 물꼬를 유지하고 파업에 들어가더라도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여론의 지지를 얻겠다는 심산이다. 그러나 협상 막판에는 정부도 초강경 대처를 외치는 등 서로간에 불신의 골이 워낙 깊다. 노조로서는 늘어가는 이탈세력에도 불구, 현 시점에서 물러날 명분이 없다. 결국 이번 협상은 노·정이 「쟁점과 명분」 모두에서 물러설 공간을 마련하지 못한 채 벌인, 양자 모두가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다. 서로가 파업을 「문제해결을 위한 모티브」로 생각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 셈이다. ◇정부, 마지막 선물을 줬지만…=정부는 지난 9일 2차 협상 이후 숨가쁘게 물밑협상을 벌여왔다. 노조 집행부가 파업을 철회할 수 있는 명분을 어떤 형식으로든 줘야 하기 때문. 정부의 선물은 예상대로 노조측이 주장한 핵심 3개항, 즉 금융지주회사 유보 관치금융 청산 특별법 관치에 따른 부실을 정부가 부담 등에 충실하되, 이를 우회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식에 모아졌다. 그러나 어떤 형식으로든 「금융개혁」의 후퇴에 이르지는 않아야 한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내놓을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았던 이유다. 정부는 우선 노조의 요구사항인 「정부 지시의 공식 문서화」 요구에 대해 투명성을 보장한다는 선언적 의미를 보장하되, 우회적 방법으로 이를 수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예금보장제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고위 관계자는 『예금보장제도의 상한선(2,000만원)을 높혀주는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단 합의문에는 시장의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한다고 밝힌 뒤 추후 한도를 4,000만~5,000만원 정도로 높히는 방법을 택할 수 있다는 것. 지주회사제도 도입 후 발생한 퇴직자에 대해 스톡옵션 등의 당근을 주는 방법도 제시됐다. 정작 중요한 건 앞으로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조가 참여할 수 있는 방법에 모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답보할 수는 없지만 노조가 정부의 구조조정 추진과정에서 일정 지분을 갖게 하는 방법을 동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 내에서는 현실적으로 노조의 파업을 정면으로 막을 만한 명분이 없고, 노조가 파업에 대한 여론의 반발에 지리멸렬하기를 바라는 분위기도 강하게 일고 있는 게 사실. 노조를 만족시킬 만한 선물을 줄 경우 이는 개혁후퇴로 인식되기 때문에 결국 여론을 통해 파업기운이 사그라지기만을 바라는 것 뿐이다. 파업에 대해 과민하게 대응할 경우 발생할 한국노총과의 관계악화에도 대비해야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파업불참 은행의 숫자에 연연하는 이유다. ◇물러날 곳 없는 노조=금융노조는 협상 초기부터 한계를 안고 시작했다. 지난 98년 9월 노사정 협상 때 당시 추원서 위원장이 쉽게 협상안에 도장을 찍는 바람에 겪었야 했던 곤혹을 현 집행부는 알고 있다. 어떤 형식으로든 확실한 담보물을 받지 않는 한 파업을 강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지난 3월 산별노조로의 결합 후 이용득(李龍得) 현 금노위원장의 첫 시험대라는 점에서 노조의 분위기는 처음부터 파업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의식이 팽배했다. 그러나 무조건적 파업은 자칫 자멸을 뜻하고, 파업 전날까지도 물러날 명분을 획득하기 위한 줄다리기에 나서기는 했다. 노조가 협상 초기부터 집중적으로 요구했던 것은 앞으로 구조조정 과정에서 어떤 형식으로 노조의 실체를 인정받느냐에 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지주회사의 경우 노조가 참여한 가운데 추가 공청회를 연 후 제도를 추진하자고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주회사 통합과정에서 은행원의 불가피한 희생을 최대한 막도록 제도적 뒷받침(퇴직자 스톡옵션 부여 등)을 하는 것은 타협의 부산물은 될지언정, 본질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쟁점과 명분」 모두 해결점을 찾기 어려웠다=노조는 100억원에 가까운 파업기금을 모아놓은 상황에서 정부로부터 구체적인 선물도 받지 못한 채 물러난다는 것은 자멸행위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었다. 이같은 논리는 결국 현실론으로 다가왔다. 정부도 2차 금융개혁의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는 시점에서 무턱대고 브레이크를 걸 수는 없었다. 금융전문가들은 『구조조정은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번 협상은 양측 모두 「진 게임」이었고 이를 「윈윈 게임」으로 돌리려면 또한번의 대화와 설득이 이어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영기기자YGKIM@SED.CO.KR 입력시간 2000/07/10 17:31 ◀ 이전화면

관련기사



김영기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