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대한 기업의 조건 라인하르트 K. 슈프렝어 지음/ 더난출판 펴냄
실로`신뢰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은 더 이상 불법 정치자금을 한푼도 준 적도 받은 적도 없다는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의 수사(修辭)를 믿지 않는다. 주주들은 분식회계와 편법 상속을 일삼으며 상투적으로 주가를 끌어 올리기 위해 투자설명회(IR)를 여는 기업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근로자들은 기업 실적을 은폐하고 자금 빼돌리기에 급급하면서 고통만을 강요하는 일부 경영자들과 그들이 고용한 회계사들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독일의 유명 경영컨설턴트인 라인하르트 K. 슈프렝어가 쓴`위대한 기업의 조건(VERTRAUEN FUEHRT)`은 좋은 기업, 휼륭한 기업이 아니라 존경받는 기업이 되기 위한 필요충분 조건은 무엇인지를 조용하지만 진지하게 묻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기업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뢰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그 신뢰는 주주와 고객 등 외부 이해관계자 뿐만 아니라 기업 내부의 인간관계, 즉 회사 경영진과 노조, 상사와 부하, 동료와 파트너들 사이에도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출퇴근 체크제, 인센티브, 특별수당 등은`나는 당신을 믿지 않아`라는 불신을 전제로 한 시스템”이라며 “신뢰는 그 어떤 통제 시스템보다 효율적인 통제 기능을 갖고 있고, 기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그 어떤 전략도 능가한다”고 말한다.
사실 지금까지 신뢰는 기업 경영에서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강조돼 온 개념이지만 그것이 증명가능한 사실이나 데이터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아무런 유용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무시돼 온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신뢰야 말로`기업 성공의 핵심요소`이며 기업이나 조직 내부에서 은연중에 작용하는 `필수적인 업무 촉진제`라고 강조한다.
나아가 저자는 신뢰는 앞으로 수십년동안 경영의 지배적인 주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최근 수년간 인간관계를 구속하는 정치ㆍ사회ㆍ경제관계의 변화로 조직은 보다 유연하고 권력분산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했고, 이로 말미암아 전통적인 통제수단이었던 권력과 자금(돈)의 가치는 점차 약화돼 버렸기 때문이다. 권력은 짧은 기간안에 사라지고 돈은 너무 많으면 사람을 움직이는 위력이 떨어진다.
여기서 저자는 신뢰를 추상적이고 모호한 관점이 아닌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다루려고 애쓴다. 즉 신뢰를 도덕적으로 선한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아니라 실제로 업무 능률을 향상시키고 조직과 개인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도구로서의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저자는`계산된 신뢰`또는`의도된 신뢰`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기업 경영에서 신뢰는 그 자체로서 가치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경영상의 이익이나 여러가지 가치를 얻을 수 있는 `경영상의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전체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우선 신뢰가 결여돼 있는 현대 조직과 사회를 진단하고 왜 지금 우리에게 신뢰가 필요한 지에 대해 논의한다. 저자는 신뢰가 성공적인 경영을 위해 필요한 이유로 다음과 같이 9가지를 들고 있다. 즉, 신뢰는
▲기업가치를 높이고 비용을 절감케 하며,
▲유연한 조직을 만들어 변화에 대한 저항을 없애며,
▲시장 대응력을 높여 고객을 끌어들이고
▲조직원간 협력을 이끌어 내고 지식과 노하우를 공유케 하며,
▲창의력을 높이고 훌륭한 리더쉽을 가능케 하는 토대를 마련해 준다.
두번째 장에서는 다소 논쟁적이긴 하지만 신뢰의 개념에 대해 살핀다. 기업경영이나 현대 조직에서 유용한 신뢰의 개념 정의를 위해 하버마스 등 현대 철학자들과 윌트 디즈니 등 성공적인 기업 경영자들의 다양한 사례를 끌어 들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뢰를 구축하고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한다. 여기서 저자는
▲신뢰를 구걸하지 마라
▲일관성있게 행동하라
▲결정적인 영향력을 훼손하지 마라 등 전통적인 신뢰 이론 외에 신뢰를 서로간의 교환관계를 전제로 한`암묵적인 계약`으로 보고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신뢰를 직접적이고 빠른 방식으로 구축할 수도 있음을 제시한다.
<강동호기자 easter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