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인 재정적자가 누적되면서 영원할 것 같던 '트리플 에이(AAA)' 미국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 2008년 가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용등급 강등을 끊임없이 경고해온 국제신용평가회사가 결국 미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이 소식에 18일(현지시간) 뉴욕증시가 1%가량 하락한 데 이어 19일 아시아 증시도 줄줄이 내림세를 보이는 등 국제금융시장이 흔들렸다. 그러나 미국의 대외신용도를 상징하는 달러가치는 유로에 대해 오히려 상승했고 미 재무부채권(TB) 값은 충격의 영향으로 한때 내렸지만(수익률 상승) 상승세로 거래를 마쳐 적어도 신용등급 전망 강등에 따른 미국경제의 충격은 일단 제한적인 모습을 보였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재정불량 미국에 칼을 꺼내들었지만 실제 등급을 강등하는 '칼부림'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덕분이다. 월가 전문가들은 실제 신용등급 강등을 예고한 것이라기보다 미국 정치권에 보내는 '경고'로 해석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워싱턴의 행동을 촉발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기사에서 미 정치권이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축소에 더 매진해야 한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던졌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S&P는 "오는 2013년까지 재정감축 계획에 대한 정치권의 합의 및 이행이 없을 경우 다른 최고 신용등급 국가에 비해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며 2년간의 시한을 부여했다. 게다가 같은 날 또 다른 미국계 신평사인 무디스는 미국의 재정적자 감축을 둘러싼 정치권의 행보가 더디지만 이런 노력은 국가신용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상반된 분석을 내놓았다. 등급 전망 강등조치가 오히려 미 행정부가 재정ㆍ국가부채를 줄이려는 노력을 재촉할 것이라는 역설적 분석도 나온다. . 사실 미국의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본다면 미국의 AAA등급 상실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S&P가 부여하는 최고 등급 국가 5개국(미국ㆍ영국ㆍ프랑스ㆍ독일ㆍ캐나다) 가운데 재정이 가장 불량한 국가는 미국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에 국가부채가 미 경제규모(GDP)를 추월하고 2016년에는 111.9%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달러 패권을 유지하는 한 최고 등급 박탈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 대외부채가 아무리 많아도 미 국채에 대한 수요는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은 최악의 경우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발권력을 동원해 달러를 찍어내 디폴트의 위험을 방어할 수도 있다. 3대 국제신용평가회사 가운데 피치를 제외하면 모두 미국 회사여서 등급이 하향 조정된 순간 월가로 대표되는 미국의 경제 패권은 추락하게 된다.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는 현재로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달러 패권의 추락 없이는 미국의 'AAA' 최고 등급 상실은 있을 수 없다는 게 현실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S&P가 1941년 이후 미국에 최고 신용등급을 부여해오고 1991년 신용전망제도를 도입한 뒤 처음으로 이를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를 무시하기는 어렵다. 미국은 재정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기축통화인 달러를 찍어낸다는 점 때문에 경제적으로 가장 안전한 국가로 취급돼왔지만 미국이 안전지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새삼 상기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달러 자산에 대한 신뢰가 갈수록 훼손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장기적으로 해외 투자가들의 달러표시자산 외면현상을 부추기는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각국 중앙은행을 비롯한 해외 투자가들의 달러화 자산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고 비중 조절을 촉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세계 최대 채권전문 펀드인 핌코의 빌 그로스는 이날 CNBC에 나와 "미 국채보다는 상황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독일ㆍ캐나다 및 브라질 국채를 사도록 투자자들에게 권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유외화 자산으로서의 달러 가치가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인 것이다. 미국의 최대 채권국인 중국은 통화전쟁 때 이를 빌미로 삼을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