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신뢰경영의 현장을 가다] 신한은행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 으레 일정금액을 대출 사례비로 건네는 것이 관행인 시절이 있었다. 이런 사례비는 대출 담당자들부터 지점장들까지 나눠 갖거나 지점의 경비로 쓰이곤 했다. 하지만 이런 관행은 지난 82년 `신한은행`이라는 후발주자가 새로 시장에 뛰어들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이건 삼정KPMG 부회장의 회고. “내가 신한은행을 다시 바라보게 된 것은 사명감과 정직함으로 무장한 `신한인`들을 만나면서부터 였다. 어느 날인가, 업무 때문에 한 신한은행 임원의 방을 들렀는데 지점장 한명이 그 임원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듣고 있었다. 보기에 민망해 지점장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임원실로 들어가 자초지종을 물었다. 알고 보니 그 지점장은 고객에게 거액의 대출을 해줬는데 고객이 감사의 표시로 지점에 약간의 경비를 찬조했다는 것이다. 그 임원은 나중에 이 사실을 전해 듣고 지점장을 불러 호통을 친 것이다” 신한은행은 창립 때부터 직원들의 급여는 물론 지점의 업무추진비도 상대적으로 더 많은 편이었다. 대출 사례비 같은 데 관심을 갖지 말고 깨끗하고 친절하게 고객을 대하라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고 한다. 신한은행은 또 파벌이나 투서, 청탁 등이 발붙이지 못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는 주주들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고 창립멤버로 참여한 라응찬 현 신한지주사 회장(창립 당시는 신한은행 상무)의 강력한 의지 때문이었다. 라 회장은 창립 첫 해부터 “어떤 형태라도 파벌 조성은 용납하지 않겠다”며 `파벌과의 전쟁`을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직원들이 사적인 모임을 갖지 못하도록 한 라 회장의 경영철학은 `신앙`에 가까울 정도였다. 그는 “단합해도 성공할 지 모를 판에 파벌을 조성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파벌의 폐해를 강조했다. 라 회장이 최근 조흥은행 인수가 확정된 후 첫 일성으로 “적자, 서자라는 구별자체가 없을 것”이라고 한 것도 이 같은 믿음을 반영한 것이다. 또 다른 신한은행 창립멤버의 한 사람인 신상훈 행장의 방에는 `처음처럼`이란 글씨가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깨끗한 은행, 친절한 은행, 파벌 없는 은행을 만들어 온 창립 이후의 `신한정신`을 잊지 말자는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예전에는 금융계에서도 인사철만 되면 투서가 난무하곤 했다. 임원인사를 사실상 정부가 좌지우지 하면서 경쟁대상에 흠집을 내고자 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모 은행의 주총을 앞두고 대통령이 직접 투서문제를 거론한 적이 있을 정도. 하지만 신한은행에서는 이 같은 투서를 찾아볼 수 없었다. 과거 청와대의 모 수석이 “신한은행에는 투서가 없어 이상하다”는 말을 했을 정도다. 당시부터 신한은행은 재일교포 주주들이 든든한 바람막이가 돼 정부의 인사개입이 많이 않았다. 투서가 없는 이유는 정실이 개입하지 않아 인사가 공정했기 때문이다. 류양상 전 신한증권 사장의 회고. “신한은행 전무로 있을 때 승진자를 내정해 놓았는데 집으로 인사청탁을 위해 찾아온 직원이 있었다. 그 직원에게 `내정자에 포함돼 있었지만 (청탁을 위해 나를 찾아 왔기 때문에) 탈락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다음날 그 직원에게 자신의 이름에 빨간 두 줄이 그어진 승진자 명단을 보여줬다” 신한은행에는 경영진 인사와 관련해 정반대의 미담이 있다. 3연임을 통해 세번째 행장 임기를 1년 남기고 있던 지난 99년 2월, 라응찬 당시 행장은 “경영지배구조가 선진적 형태로 바뀌는 지금이 바로 부여 받은 소임을 일단락 할 때”라는 말을 남기고 퇴임했고 이인호 당시 전무가 후임 행장으로 취임했다. 당시 언론은 이를 두고 `아름다운 세대교체`란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 사회봉사 활동 지난 9월의 어느 토요일, 태풍 매미의 상흔이 남아있던 경남 마산지역에 신한은행의 젊은 직원들이 나타났다. 주 5일 근무제 실시 이후 휴일이 된 토요일을 반납한 이 들은 넥타이와 양복 대신 작업복을 입고 태풍 피해 복구를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이날의 피해복구 작업은 특히 인천지역의 신한은행 고객들도 대거 동참해 더욱 뜻이 깊었다. 신한은행 직원들은 지난 해에도 태풍 루사로 피해를 입은 강원도 강릉지역을 방문해 피해복구 작업에 동참하는 등 사회의 아픔을 나누는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 95년 1월에 발생한 일본 고베지역의 지진 피해 당시 젊은 행원들이 일본에까지 건너가 복구 사업에 동참하기도 하였다. 신한은행은 또 지난 88년부터 선생님 해외보내기 운동을 펼쳐 매년 교사들을 `일본 속의 한민족사 탐방` 행사에 초청하고 있으며, 96년에는 역시 교사들을 대상으로 고구려 문화유적지 탐방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 같은 활동은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금융 상품의 개발 등 은행영업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상품이 지난 94년에 판매를 개시한 그린복리신탁. 신한은행은 지난 96년 10월 이 상품의 판매를 통해 얻은 수익금 중 일부를 활용해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린비전 콘서트를 개최하는 한편 환경보전협회에 환경감시 용 경비행기 4대를 기증했다. 이어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5월에는 `나라 살리는 통장`을 만들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신한은행은 이밖에도 해마다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성금 기탁과 군부대, 양로원, 고아원 방문 등 다양한 사회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영등포역에서 근무 중 어린이를 구하려다 열차에 치어 다리를 다친 `의로운 역무원` 김행균씨에게 직원들의 성의를 모은 성금 1,000만원을 전달하기도 했으며,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97년부터 매년 1억원 이상의 성금을 110명의 소년ㆍ소녀 가장 돕기에 지원하고 있다. ■ 신한은행 친절서비스ㆍ투명경영 사례 과거에 은행은 `문턱이 높은 곳`이란 말이 별명처럼 따라다녔다. 은행원들은 준 공무원 비슷하게 여겨졌고 대출이나 수출입서류를 잘 못 작성해서 은행에 가면 은행원에게 면박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신한은행 직원들이 창립 당시부터 창구에서, 길거리에서 고객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고객을 직접 방문해 영업을 하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마케팅 방식을 도입해 금융계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당시 여행원이던 신보금 올림필 선수촌지점장은 “창구나 길거리에서 인사를 하면 고객들이 놀라 뒤를 돌아보기 일쑤였고 다른 은행 직원들은 은행권 망신을 시킨다면서 손가락질을 하곤 했다”고 그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신한은행이 한창 성장가도를 걷던 92년에 입행한 신윤옥 대리는 “거울을 보며 화장을 할 때도 웃는 연습을 하니까 가족들이 머리가 이상해 진 것 아니냐며 의심할 정도였다”며 “어느 날인가는 새벽 2시쯤 잠결에 잘 못 걸려온 전화를 받고도 `정성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말까지 했다”며 웃었다. 신한은행은 `친절한 은행`을 뛰어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계속했다. 국내에서 고객만족이란 용어와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지난 93년에 국내은행 최초로 고객만족센터를 출범시켜 다른 은행들을 놀라게 했다. 모든 경영활동에서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이런 노력은 각종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거의 매년 빠짐 없이`고객만족 최우수은행`으로 선정되는 성과로 이어졌다. 신한은행은 기업경영의 가장 큰 핵심인 `투명경영` 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국내 은행들은 외환위기 이후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를 요구 받게 되었고 그 핵심은 `투명경영`과 `책임경영`으로 요약된다. 신한은행은 98년 1월 투명한 책임경영을 실현할 수 있는 사업부제를 전격 도입했고 이후에도 기업여신관리시스템(CRM), 개인신용평가시스템(CSS) 등의 선진 금융시스템을 연이어 국내 최초로 시행했다. 과거에는 은행 임원이 되면 특별히 성과에 대해 책임질 일이 별로 없었으며 운만 좋으면 이사와 상무, 전무로 승진하며 오랜 기간 임원으로 재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업부제 하에서는 임원들이 자신이 맡은 사업부의 성과에 대해 투명하게 검증 받고 이에 대한 책임과 보상도 함께 따르기 때문에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지금은 일반화됐지만 `시스템`으로 `책임경영`을 정착시킨 것이 바로 사업부제의 도입이다. 이 같은 노력들을 바탕으로 지난 9월 16일에는 신한은행을 주축으로 탄생한 신한금융지주회사가 뉴욕증시에 상장됨으로써 투명경영을 국제적으로 인정 받기에 이르렀다. 채수일 BCG 한국지사장은 “기존의 틀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면서 “이를 과감히 시행한 신한은행은 (사업부제 등 투명성을 높인 제도를 통해) 외환위기 이후 `준비된 개혁`을 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진우기자 ra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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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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