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한국은 헤지펀드의 황금어장

최근 우리 증시가 거침없이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가지수는 사상 처음 1,600포인트를 넘어섰고 시가총액도 900조원에 육박해 국민총생산을 앞질렀다. 금리가 안정된 가운데 기업 이익이 늘고 연기금 투자가 확대되는 것이 지난 80~90년대 미국 증시의 대세상승기와 유사하다는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향후 증시를 낙관하기에 앞서 80년대 미국 증시의 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미국 증시는 기업사냥꾼이 활개치는 약탈적 주주행동주의의 온상이었다. 지난해 KT&G의 경영권 분쟁을 유발했던 칼 아이칸이 GM이나 US스틸 등의 경영권을 공격한 것도 바로 이때다. 미국 경제가 일본에 밀려 장기침체에 빠진 것도 이런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다. 월가에서는 한국 증시가 매력적인 투자처로 통한다. 기업의 부채비율은 낮고 현금보유액은 넘치는 가운데 제도적으로도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별다른 제한이 없기 때문에 한국 증시는 가히 헤지펀드의 황금어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증시를 무대로 수익률 게임을 벌이는 헤지펀드 수는 1만개를 넘어섰고 그 운용자산은 1조5,000억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이 같은 막강한 자금동원력이라면 시가총액 83조원의 삼성전자도 안심하기 힘들다. 국가기간산업체인 포스코의 경우에도 외국인 지분율이 이미 59.3%로 백기사를 동원해 방어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면서 얼마 전 M&A 위협을 호소한 바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 기업들은 변변한 방어장치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창칼과 방패를 써보지도 못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여러 가지의 의결권 제한조치 때문에 갑옷마저 벗은 상태에서 국제헤지펀드라는 거대한 골리앗에 맞서야 하는 실정이다. 우리 상장사들이 자사주 취득에 지불한 금액은 지난 한해 총 7조3,000억원이며 올해에도 3월 말까지 3조5,0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투자와 제품 개발 등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쓰일 자금이 이렇듯 경영권 방어를 위해 허비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외환위기 직후의 벤처 투자 열풍과 코스닥시장의 거품 붕괴를 통해 머니 게임이 얼마나 큰 후유증을 낳는지 잘 알고 있다. 날씨가 맑을 때 지붕을 수리하라는 말처럼 증시 상황이 좋을 때 헤지펀드의 M&A 위협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 기업의 내재가치가 높아지는 가운데 증시가 지속적으로 상승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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