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네트워킹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A업체는 기술보증기금으로부터 기술평가를 받고 자금을 보증받아 벤처기업으로 확인받았다. 벤처 인증을 받은 후 자금 사정이 나아져 대출금을 갚으려고 했지만 기보로부터 이상한 제안을 받았다. 어차피 정부의 기술보증을 받아 저리로 대출을 받은데다 벤처기업으로 인증돼 있으니 대출금을 갚지 말라는 것이었다. 대출금을 갚아버리면 벤처확인제도 중 다른 유형으로 다시 벤처 확인을 받아야 했다. A업체 대표는 "기보의 이야기가 우리 업체 입장에서는 더 이익이 되는 말이라 수긍하고 대출을 갚지 않기로 했다"면서도 "사실상 국민의 세금을 통해 저리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인데 혜택을 받으면서도 꺼림칙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벤처기업 확인 제도를 오는 2017년 벤처특별법 일몰 시기에 맞춰 개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대부분의 기업이 정부기관의 기술평가보증과 대출을 받아 벤처기업으로 인증을 받다 보니 A업체와 같은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벤처 생태계가 어느 정도 성숙했다는 판단도 개편작업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벤처특별법이 만들어진 즈음인 지난 1997년에는 벤처기업 수가 2,042개로 '벤처 생태계'라는 말을 쓰기도 민망한 상황이었지만 올 9월1일 현재 3만433개까지 늘었고 벤처캐피털업체들도 상당히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역할을 줄여야 할 시기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인수합병(M&A) 등을 통한 투자 회수 시장을 키우자는 인식도 자연스럽게 확산되고 있다.
한 벤처기업 연구원은 "그동안 우리의 벤처 생태계는 미국 등 선진국과 달리 정부가 벤처를 육성하고 지원하는 방향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어 양적 성과는 나타났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많았다"면서 "벤처 인증 방식을 예비벤처와 본벤처로 나눠 정부의 기술평가는 받았지만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지 못한 예비벤처기업들의 정보를 투자자들에게 공유해 투자를 유도하는 방식이 기존 벤처 확인기업들에 준비할 시간도 줄 수 있고 정부 주도에서 시장 친화적으로 벤처 생태계를 변화시킬 복안"이라고 주장했다.
2006년 벤처확인제도 개편 당시 신기술 기업 중심의 벤처확인제도가 안정적인 융자보증 위주로 바뀌었기 때문에 이를 원상복구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융자보증 위주의 확인제도가 2006년 도입되면서 고기술·고위험 기업들은 벤처확인제도에서 탈락하고 고기술·저위험 기업들은 기술평가보증으로, 기존에 벤처 확인을 못 받았던 기업들이 대거 기술평가보증과 대출기업으로 들어오게 돼 '무늬만 벤처'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KAIST 교수)는 "2006년의 벤처확인제도 개편이 시장 친화적으로 진행됐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융자보증 위주의 벤처 확인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벤처 생태계의 연구개발(R&D) 투자금액이 2006년 이전 매출액 대비 5% 수준에서 2%까지 줄어들게 됐다"며 "벤처확인제도는 2006년 이전의 제도로 복귀해야 한다는 원칙하에 문화·예술·콘텐츠 등 다양한 분야의 벤처 확인을 재수용하고 R&D 투자 비중이 높은 기업들이 벤처 확인을 받을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메인비즈·이노비즈 등 벤처기업과 유사한 혁신기업제도도 이번 기회에 한꺼번에 논의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2006년 융자보증 위주의 벤처확인제도가 도입되면서 기술평가보증을 통해 벤처 확인을 받은 기업이 전체 벤처기업(3만433개) 가운데 83.8%(2만5,502개)에 이르기 때문에 기술평가보증형 벤처확인제도는 당분간 병행하고 장기적으로 기보의 융자보증이 투융자보증 형태로 발전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술평가보증형 기업 이외에 벤처 확인 유형을 살펴보면 기술평가대출기업(7.57%), 연구개발기업(5.43%), 예비벤처기업(0.23%) 등이 뒤를 잇고 있으며 민간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아 벤처기업으로 인증받은 기업은 2.98%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