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위기의 건설사업, 民官 협력으로 넘어라] <3>건설韓流, 외교·금융지원 수반돼야

정부 엄호 제대로 안해 각개전투…업체간 출혈경쟁 악순환<br>금융권 지원체계 걸음마 수준…중동 편향된 시장구조도 문제<br>유럽·中등 견제 갈수록 심해…해외건설 컨트롤타워 구축해야



지난해 국내 건설업계가 사상 처음으로 해외 수주 700억달러를 돌파하자 정부와 연구기관 등에서는 지난 1980년대 중동 붐 이후 제2의 해외 수주 황금기가 도래한 것 아니냐는 장밋빛 전망이 쏟아졌다. 2006년 이후 5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우는 쾌속 행보를 이어간데다 올해 전망 역시 긍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올해 800억달러를 돌파하고 오는 2014년 2,000억달러를 수주해 해외 5대 건설강국으로 진입하겠다는 청사진까지 제시됐다. 하지만 일선 업계에서는 장부에 찍힌 숫자와 달리 "지금부터가 위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끊임없이 제기되는 저가수주 논란과 중동시장 편향, 낮은 부가가치 등이 그 이유다. 여기에 유럽과 중국 등의 견제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 특히 저가수주는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한 대형건설사 해외영업담당 임원은 "고급 플랜트 시공부문은 국내 건설사들이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보니 중동 시장 수주전이 국내 업체 간 경쟁인 경우가 허다하다"며 "주택 등 내수 시장이 위축돼 있어 해외 플랜트에서 무리한 출혈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효원 해외건설협회 전무는 이에 대해 "해외건설분야는 우리나라가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게 할 성장동력"이라며 "업계는 출혈경쟁을 자제하고 정부는 외교ㆍ금융 분야에 대한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바탕으로 해외 시장에서 '건설 한류(韓流)'를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 건설 '컨트롤타워'가 없다=건설업계는 무엇보다도 정부의 체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직접 수주 활동을 관리하는 중국ㆍ일본 등과 달리 우리나라는 각 업체 별로 '각개전투'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업체 간 출혈경쟁은 이런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2008년 6월 쌍용건설은 현대건설 등 국내 6개 업체와 컨소시엄을 맺고 총 사업비 107억8,000만달러 규모의 이라크 쿠르드 재건사업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당시 국내 건설업체가 해외에서 수주한 최대 규모의 단일 계약 공사였다. 하지만 이 계약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없던 일'이 돼버렸다. 당장 거액을 지불할 수 없었던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는 공사비 대신 8개 석유광구에 대한 시추권을 주는 형태의 '자원-SOC(사회간접시설) 패키지 딜'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했지만 건설사 컨소시엄이 2조원에 달하는 시공자금을 조달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당시 컨소시엄에 참여했던 한 건설사의 관계자는 "정부가 지급보증에 난색을 표하면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체가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컨소시엄은 해체됐고 이 패키지 딜은 현재 중단된 상황이다. 금융지원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단순도급 사업에서 벗어나 투자개발사업 등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고도로 선진화한 금융기법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한데 국내 금융업계의 현실은 이에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이다. 김훈 대우건설 해외영업본부 상무는 "정부가 자금지원을 해줘야 한국 업체도 건설사 간 동반진출을 모색할 수 있다"며 "현재는 수출입은행에 보증을 의존하는 구조라 사업을 벌이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유럽ㆍ중국 사이의 '샌드위치' 상태에서 고군분투=정부 지원과 별개로 우리 건설업계는 갈수록 치열해지는 해외 수주 시장에서 '기술의 유럽'과 '가격의 중국'에 각각 밀려 고전하고 있다. 대형건설업체 A사는 지난해 말 사우디에서 플랜트 공사 수주에 나섰으나 중국 업체에 결국 고배를 마셨다. 총 사업비가 2억달러 규모로 추산되던 이 프로젝트에 중국 업체는 1억6,000만달러를 써내 원가 경쟁력에서 다른 나라 업체를 압도했다. A사의 한 관계자는 "중국 업체가 입찰에 나서면 대부분의 한국 건설사는 아예 수주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가격 경쟁력으로 공사를 따내던 시대는 지났다"고 설명했다. 점차 입지가 좁아지는 우리 건설업계의 현실은 실제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세계적 건설정보지인 ENR이 세계 225대 건설업체의 매출액 동향을 분석한 결과 중국은 2009년 505억7,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려 세계 시장점유율 1위(13.2%)로 올라섰다. 우리나라 건설사 역시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같은 해 총 매출액은 163억4,000만달러에 불과해 점유율이 전체 9위(4.3%)에 불과했다. 2007년 중국의 해외 시장 점유 순위가 7위였던 점을 감안하면 다른 후발 국가도 언제든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우리나라를 추월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동에만 편향돼 있는 수주 시장 구조도 문제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해외 건설시장에 처음 진출한 1965년 이후 지난 45년간 중동 지역에서의 수주 비중은 62%에 달한다. 해외 공사 3건 중 2건은 중동에서 따낸 셈이다. 수주 지역이 쏠려 있다 보니 현지의 정치ㆍ경제적 상황에 수주실적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중동의 경우 유가가 급락하면 공사가 중단되거나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금을 먼저 투입해 공사를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어 금융비용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정부 지원 속 고부가가치형 해외 수주시장 구축해야=해외 건설 전문가들은 당장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서 새로운 먹을거리를 발굴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권오식 현대건설 해외영업본부 상무는 "석유 및 가스 플랜트와 화력발전소, 일부 기술 집약적 토목ㆍ건축 분야에서는 우리 업체가 어느 정도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며 "이 밖에 직접 투자 사업, 민자발전(IPP), 신재생에너지 사업 등에서 더 큰 기술 발전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또한 엔지니어링 분야의 취약점을 개선하기 위해 선진 엔지니어링 업체와 제휴 및 기술개발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한승헌 연세대학교 교수는 "현재는 해외 10개 사업장 중 일곱 곳이 손해를 보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며 "고부가가치 분야인 엔지니어링 분야 등으로의 적극적인 진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외 건설시장에 처음 진출하는 중소 업체에 충분한 지원 및 정보제공을 할 수 있는 시스템도 확립돼야 한다고 지적됐다. 이른바 '발주처 리스크'를 피할 수 있는 노하우 전수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우디아라비아는 외국 업체가 단독 수주해 공사할 경우 차별적인 법인세를 물린다. 이런 예상 밖 위험을 피하는 방법을 공유할 수 있어야 중소 업체가 경쟁력을 쌓아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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