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신공항 계획이 백지화 수순을 밟을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신의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 대통령의 주요 대선공약인 세종시 건설, 과학비즈니스벨트 건설에 이어 동남권 신공항까지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었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또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대통령의 잇단 공약번복이 결국 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타났다.
28일 동남권 신공항에 대한 청와대의 공식 입장에 대해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동남권 신공항은 아직 심사 중인 사안으로 관계부처에서 심사가 끝나면 투명하게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내부 기류는 다르다. 이날 복수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국토해양부 입지평가위원회가 30일 또는 31일 동남권 신공항 평가 결과를 발표한 예정인 가운데 신공항 후보지인 경북 밀양과 부산 가덕도 모두 경제성에서 부적합하다는 평가가 내려질 것이 확실시된다.
이렇게 동남권 신공항 사업이 백지화되면 세종시 백지화 시도와 과학비즈니스벨트의 충청권 유치 원점 재검토에 이어 세 번째로 이명박 정부의 핵심 공약이 뒤집히는 것으로 앞서 두 차례의 약속위반으로 이미 신뢰 부분에서 취약해진 이 대통령에게 커다란 정치적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동남권 신공항 후보지 결정과정에서 이 대통령은 직간접적으로 '이심(李心)'을 전달한 바 있어 공약 백지화에 따른 부담을 청와대가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에 대한 이 대통령의 의중은 전날 여권 고위관계자의 발언을 통해 언론에 공개됐다. 또한 이 대통령은 지난 17일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와의 정례회동에서 "당이 신공항 문제에 대해 의원 참여를 자제시키는 것은 참 잘한 것이다. 국책사업에서 정치적 논리는 배제돼야 한다. 정부도 경제논리를 갖고 자제를 요청해야 한다"며 사실상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쪽에 무게를 실었다. 이 대통령은 세종시 백지화와 과학비즈니스벨트 백지상태 재검토 발표 때도 경제논리를 앞세우며 "대선 때 표를 의식했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국가 백년대계와 국민 다수의 이익을 위해 일부 공약 불이행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다른 지방공항이 모두 실패로 돌아간 상황에서 경제적 타당성을 무시하면서까지 공약을 지키자고 막대한 국가예산이 투입되는 동남권 신공항을 추진하는 것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옳은 선택이 아니다"라며 "지역민들의 반발은 예상하지만 국익을 위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문제는 '정치불신'이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대통령이 선거공약을 지키지 못하는 일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흔히 있지만 이 대통령의 경우 세종시와 과학비즈니스벨트, 그리고 백지화로 결론이 난다면 동남권 신공항까지 핵심 대선공약을 모두 지키지 않게 되는 것"이라며 "이렇게 정치인의 공약이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유권자들이 어떻게 선거에서 제시되는 공약을 신뢰하고 정치를 신뢰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