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시론] 이상한 나라의 워크아웃

이성규(기업구조조정위원회 사무국장)요즘 이런 질의를 자주 받는다. 『워크아웃 대상기업의 실사기관인데, 회계감사 수임이 가능하겠냐』고. 기업구조조정위원회의 입장은 분명하다. 실사기관은 향후 2년간 해당기업의 회계감사 수임을 맡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의 경험으로 보건데, 감사 수임을 전제로 하면 채권단이 선임한 실사기관일지라도 아무래도 기업측의 입장에 가까워지기 마련이다. 최소한 지켜져야 할 실사기관의 독립성이란 것이 있다. 회계법의 영업측면에선 이런 질문이 이해간다. 다행히도 전문기관의 도덕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회계법인들은 조용히 자제하는 모습이다. 도덕성이 훼손되면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 정말 의아한 것은 가끔 이런 질문의 주체가 채권단을 대변해야 할 주채권은행이라는 것이다. 실사기관이 회계감사까지 도맡으면 업무가 효율적이지 않느냐는 자상한 설명까지 덧붙인다. 얼마전만 해도 실사기관의 서비스에 대해 극히 불만을 표시하던 주관은행측이다. 주채권은행의 이런 하소연도 있다. 기업측이 실사기관을 감사기관으로 우기는데, 위원회가 금지 공문을 내줄 수 없느냐는 것. 강한 금지규정이 필요하다는 부탁이다. 자기채권을 보전하는 일인데 규정이 없어서 못 한다니, 그 사고방식에 허탈할 뿐이다. 워크아웃기업에는 통상 경영관리단이 파견된다. 채권단이 채권을 보전하려는 최소한의 방어장치다. 또한 주총을 앞두고서 이사회를 보강하고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해 채권단은 자신의 입장을 대변할 사외이사를 기업측에 추천하게 된다. 일부 워크아웃기업들의 반응이 또 걸작이다. 『우리는 채권단의 출자전환도 없어 경영권을 보장받았는데, 왜 사외이사를 파견하느냐』고 따진다. 내심 내맘대로 하겠다는 심사다. 기업주의 사고방식은 아직도 이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실패한 사업구조와 실패한 경영구조를 그대로 끌고 간다면, 워크아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채권단은 채무조정을 통해 막대한 손실부담을 치룬 만큼, 최소한 경영감시를 허용해야 하는 것이 기업측의 의무다. 채권단이 나서 기전에 스스로 투명성을 보장하는 장치를 마련하여 채권단과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옳은 일이다. 더욱 이해하지 못할 일은 채권은행들의 태도다. 자신들이 워크아웃기업에 대해서 경영권을 너무 심하게 제약하는 것이 아니냐는 自省의 소리(?)가 나온다. 경영관리단이 제 기능을 못하는 워크아웃기업들의 경우 대부분 주채권은행은 대체로 이러한 채권은행들과 일치한다. 가끔 채권단의 권익보호를 위해 적극적인 자세로 경영진을 견제하려는 소망스런 경영관리단장도 있다. 이러한 의욕은 철저한 사후 관리로 이어진다. 얼마전에 다시 만난 경영관리단장은 예전의 그 모습이 아니다. 『좋은 게 좋은 건데 대충하라』는 누군가의 질타 때문인지 초기의 의지가 한풀 죽어있다. 그렇다면 경영관리단은 왜 파견하는지. 낭비일 뿐이다. 사실 오너가 전부인 것이 우리 기업의 풍토다. 이러한 환경에서 소신으로 맞설 수 있는 경영관리단장은 아주 희귀종에 속한다. 대체로 현장을 방문해보면 경영관리단은 채권자로서의 당당함이 없고, 워크아웃기업의 한켠에 사무실을 빌어쓰고 있는듯한 민망함 뿐이다. 기업주인 회장앞에서는 송구스러움이 거의 그 회사의 임직원이나 다름없다. 기업주도 여전히 내 회사라는 태도다. 워크아웃의 성공은 경영계획목표의 차질없는 이행에 달려있다. 경영진을 독려하는 장치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경영목표와 실적을 분석하고 해당경영진을 평가하는 경영평가위원회를 만들게 된다. 이어 유능한 후보자를 찾아주는 경영진 추천위원회가 가동된다. 경영진 입장에서 보면 매우 껄끄러운 장치들이다. 확실한 것은 견제받지 않는 경영은 항시 부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워크아웃이란 채무조정을 통해 부실기업을 연명시키는데 목적이 있지 않다. 경영진으로 하여금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책임경영의 기틀을 세워나가는 과정이다. 여기서도 아이러니는 견제기구의 가동에 적극 나서야 할 주채권은행 측에서 오히려 귀찮아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적절한 인물을 뽑고, 채권단의 동의절차를 밟아나가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기업에서 어떻게 부실채권이 발생하였는지 심각성을 까맣게 잊은 것 같다. 의외로 주관은행은 견제기구의 본질적인 기능에 대해 고민이 별로 없다. 사외이사, 사외감사, 경영관리단장 등으로 自行의 명퇴자들에게 일자리가 늘어난 것에 만족하는 분위기다. 워크아웃 실무자들도 후보자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 어디서 결정나는지 막판 삽입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어떤 때는 경영관리단장이 바뀌고 같은 회사의 사외이사로 자리를 겼다는 통보를 받는다. 워크아웃 기업을 둘러싸고 보직의 서열이 정해지는 과정이다. 정작 정착되어야 할 워크아웃의 관행은 이런 것들이 아니다. 유능한 채권자측 인물을 활용하는 것은 물로 좋은 일이나, 그래도 채권단은 자기이익을 위해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워크아웃을 진행하다보면, 종종 누가 채권단 역할이고 누가 기업주 역할인지 모를 때가 있다. 서로가 역할이 바뀐듯한 착각이 든다. 정말 우리는 「이상한 나라」에 와 있는 「앨리스」가 되어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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