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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위치한 라이프스타일숍 '모던하우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트리와 조명 장식, 인테리어 소품 등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머그컵은 4개들이 세트가 5,900원, 전기주전자는 1만9,900원이다. 이랜드가 운영하는 모던하우스는 지난 1996년 론칭된 후 국내 중저가 생활용품 전문점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이곳의 최대 강점은 싼 가격이다. 하지만 이랜드는 6월 일부 스테디셀러를 중심으로 모던하우스의 상품 가격을 더 내렸다. 수납공간인 '스페이스 캐비넷'의 경우 기존 15만9,000원에서 9만9,000원으로, 12만9,000원짜리 미니테이블 의자 세트는 7만9,900원으로 낮췄다. 론칭 이후 모던하우스의 가격인하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랜드의 한 관계자는 "요즘 서민들의 실체감물가가 높아 '가격 내리기 프로젝트'를 단행했다"고 말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확산으로 소비절제가 소비자의 미덕으로 자리 잡으면서 백화점·대형마트는 물론 인터넷몰·외식업체까지 '덜 쓰게 한다'는 명목으로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 너도나도 할인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외식업계의 경우 미스터피자는 평일 점심 9,900원 행사를, 아웃백은 통신사 제휴로 매주 1회 반값 행사를 진행한다. 더페이스샵·네이처리퍼블릭 등 저가 화장품 업체들의 '1+1' '10+10' 등 반값 행사도 일상이 됐다. 오는 21일부터 겨울 정기 세일에 들어가는 백화점 업계는 해외 수입 브랜드에서 국내 유명 브랜드에 이르기까지 또다시 역대 최대 규모의 할인물량을 쏟아낼 예정이다.
문제는 이 같은 치열한 가격파괴 경쟁에도 불구하고 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편의점 저가 자체브랜드(PB) 식품의 인기가 말해주듯이 외식보다는 편의점 간편식을 선호하고 의류의 경우 유행을 좇는 신상품보다는 한철 입고 버리는 저가 SPA(제조유통일괄) 상품을 구매하며 더 심하면 아예 소비를 하지 않는 사람이 늘고 있다. 글로벌 여론조사 업체인 닐슨이 이달 초 발표한 '소비 심리 및 지출 의향 조사'에서 한국 소비자의 73%가 지난해 외식비, 의류 구입비 등을 줄이는 등 가계지출 절감을 위해 소비행태를 바꾼 것으로 나타났을 정도다.
박진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경제 저성장 기조 진입과 함께 높아지는 청년 실업률에 따른 일자리 불안감, 인구 고령화 등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이는 가계의 소비 의지를 약화시키고 소비절제·절약에 대한 욕구를 고조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지출 중 비소비지출 비중은 1991년 9.2%에서 올 상반기에는 23.9%까지 증가했다. 조세 및 연금 부담, 가계부채 증가 등에 따른 금융비 지출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같은 유통업계의 심화되는 가격파괴 경쟁은 20여년 전의 일본 내수시장과 닮아 있어 저물가·저소비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일본에서도 장기불황 초기인 1990년대 초반에 가격파괴라는 말이 등장했다"며 "이후 가격경쟁이 더 심해지고 장기불황이 맞물리면서 가격파괴가 디플레이션으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연 연구위원도 "미래소득에 대한 기대감이 없고 모든 사회적 현상이 사회적 위험요소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라 기업이든 소비자든 지갑을 닫고 투자를 줄이는 등 방어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며 "기업들의 가격인하 정책 역시 신규 투자보다는 우선 가격인하로 소비자를 끌어들이자는 것인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 염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부터 짧게 보면 2년, 길게 보면 10년 장기 경기불황에 들어갈 위험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기존의 경제운용 방식과는 다른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온갖 종류의 개혁이 일거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