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국가의 안위, 변리사의 안위


내년 로스쿨생 배출을 앞두고 대한변리사회가 변리사에게도 소송대리권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변리사는 기술과 법 양쪽에 깊은 소양이 있는 사람들인데 우리나라는 특허강국과 달리 변리사에게 소송대리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글로벌 특허전쟁에서 한국이 길을 잃었고 그로 인해 국가안위도 위태롭다는 것이다. 법률가는 증거로 말해야 한다. 변리사회는 자기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외국의 입법례를 잘못 인용하고 있다. 변리사회가 말하는 미국ㆍ영국ㆍ독일ㆍ프랑스ㆍ일본 등 특허강국 어디에서도 변리사에게 그냥 소송대리권을 주는 나라는 없다. 변리사가 특허사건을 소송대리하려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도록 하는 게 미국ㆍ독일ㆍ프랑스 등 특허강국들을 포함해 전세계적인 대원칙이다. 선진국도 변리사 소송대리 제한 변리사회는 영국과 중국의 입법례를 들어 반론을 펴고 있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모든 소송대리권을 배리스터(Barrister)에게만 부여하고 솔리시터(Solicitor)에게는 제한적 대리권을 인정해왔다. 지난 1990년 특허카운티법원의 소액(5만파운드 이하) 특허사건에 한해 변리사에게 소정의 자격 인정절차를 거쳐 소송대리권을 줬다. 중소기업이나 개인 발명가들이 특허등록 단계에서 변리사의 조력을 받고 권리구제 과정에서 솔리시터와 배리스터를 함께 선임하는 데 따른 과도한 경비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다. 그 외에 특허청의 결정에 대해 지방법원(High Court)에 불복신청할 때도 대리권을 추가로 인정했다. 그러나 영국도 특허등록 취소의 건이나 특허침해 사건에서는 변리사들에게 소송대리권을 인정한 예가 없다. 일부 인정했던 소송대리권도 2007년 법 개정으로 2010년 초 제도가 폐지되고 새로운 입법을 준비 중이다. 그것은 변리사들에게 위와 같은 소송대리권을 인정했음에도 자격취득절차에 대한 부담과 고도의 소송기술의 필요성 때문에 변리사들이 별로 유익하게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아직 사법제도를 발전시키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입법례를 고려할 가치가 없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변호사들이 법원에서 외국의 특허소송 공세를 성공적으로 방어하고 있다. 더구나 고도화된 현대 사회에서 변리사와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지식을 갖춘 비법학 분야의 전문가를 법조인으로 받아들이고자 도입한 로스쿨에서 내년부터 변리사 자격자를 포함한 비법학 전공 변호사들이 매년 1,000명 이상씩 쏟아져 나온다. 이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이면서도 소송대리를 할 자격을 갖추기 위해 힘들고 고통스런 과정을 이겨내고 소송기술을 익히고 있는 사람들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변리사는 특허전문가이므로 소송대리권을 달라는 것은 현재 국회에 자신들도 전문가라며 소송대리권을 달라는 법안을 제출한 법무사ㆍ노무사 등 많은 전문가들의 요구와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변리사들의 요구는 국가 장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변리사 등 각계 전문지식을 갖춘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대량 배출을 앞두고 '변리사의 안위'를 위한 요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소송대리하려면 로스쿨 지원을 이런 시점에서 변리사회가 소송대리권을 강력히 요구하는 것은 국민적 합의로 출범한 로스쿨이 첫 졸업생을 내기도 전에 제도 도입 취지를 반감시키고 나아가 변호사 자격증의 뒷문을 열어달라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소송기술이 없는 변리사들이 진정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특허전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싶고 그 전쟁에서 이기고 싶다면 소송대리권을 달라고 하기보다는 하루빨리 국가가 그러한 비법학 전문가들을 위해 마련한 로스쿨에 지원해 소송기술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 길만이 특허 침략에 대해 국가안위를 굳건히 하면서 변리사의 안위도 지키는 길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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