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난세 뛰어넘는 풍류정신

정국이 이처럼 어지러운 까닭은 존경할만한 정치지도자가 없기 때문이다. 인정이 갈수록 메말라가고 세태가 각박해지는 것은 존경할만한 사회적 스승이 없는 탓이다. 존경할만한 기업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선거가 아직도 반년이나 남았는데 정치권은 벌써부터 술렁거리고 있다.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가 저마다 잠룡(潛龍)을 자처하지만 그들의 국가관이 참으로 믿음직한지, 또는 건전한 도덕적 가치관을 가졌는지 앞으로 철저한 검증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그들이 구세제민의 경륜과 난국타개의 의지와 용기가 탁월한지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거짓이란 주머니 속의 송곳과도 같아서 아무리 진실의 탈을 쓰더라도 곧 정체가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사실이다. 언제 누가 또 '행동하는 욕심'을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나설지 누가 알겠는가. 국민은 그저 이들이 용은커녕 이무기도 못되며 사회적 화해와 통합에 기여하기는커녕 반목과 질시를 심화시키는 메기나 미꾸라지가 아니기를 바랄뿐이다. 난세의 회오리바람을 타고 혹세무민(惑世誣民)해 백성의 삶을 더한층 간고한 구렁텅이로 떠밀어넣는 간웅(奸雄)이 아니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여기에 빈익빈 부익부(貧益貧富益富) 현상의 양극화는 소외된 계층의 절망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패륜적 범죄가 빈발하고 공권력의 대응은 그에 미치지 못하니 치안부재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아지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오늘 우리가 처한 형세를 가리켜 난국(難局)을 넘어 국난(國難)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한치의 여유도 없이 갈수록 각박해지는 세상, 진정한 도사(導師)도 없는 이 난세를 어떻게 살아넘겨야 할 것인가. 그래서 다시 한번 현세의 거울이며 미래의 등대인 역사를 되돌아보자는 것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고 선현들의 한 삶에서 슬기를 구할 수밖에 없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멋과 여유를 잃지 않았던 선현들의 풍류정신을 오늘에 되살리자는 것이다. 돌이켜보건대 세태가 이토록 각박해지고 살벌해진 까닭은 물질만능주의ㆍ황금제일주의ㆍ출세지상주의의 속물근성이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고 황폐화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지경까지 이르게 된 데에는 사리사욕만 앞세운 역대 위정자들과 공리공명(空利空名)에 나약한 지식인들의 책임이 가장 컸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이 되풀이되는 역사의 교훈을 망각하고 올바른 역사교육을 소홀히 함으로써 불러온 자업자득이었던 것이다. 우리 민족의 풍류정신은 고유의 현묘(玄妙)한 도(道)였다. 미풍과 양속의 건전한 자취요 속된 잡사를 여읠 줄 아는 우아한 품격이었다. 멋과 여유로 운치있게 즐길 줄 알았던 지혜의 정화(精華)였다. 이런 멋과 슬기가 곧 흥과 한을 양대 축으로 하는 민족 고유의 풍류정신이었다. 선현들은 인생의 유한함과 세속 명리의 허망함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가 어지러울수록 공리공명을 멀리했던 것이다. 하지만 풍류정신이 곧 현실에 대한 방관이나 도피의 방편은 결코 아니었다. 이웃의 고통을 외면한 채 나홀로 한가롭게 산수간에서 노닐며 가무음주나 음풍농월로 세월을 잊고 지낸 것은 아니었다. 진정한 풍류정신은 학문을 사랑하고 무예를 숭상하며 호연지기를 기르는 것이었다. 산수와 저자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자연과 일상 속에서 멋과 여유를 즐기며 난세를 뛰어넘을 줄 알았던 것이다. 이렇게 풍류정신으로 난세를 살아넘기고 민족사를 빛낸 도사들이 곧 원효(元曉)요, 고운(孤雲)이요, 백운(白雲)이요, 매월당(梅月堂)이었다. 교산(蛟山)이요, 다산(茶山)이요, 추사(秋史)요, 김삿갓이었다. 이들은 비록 역사의 고빗길과 시대의 응달길을 인고(忍苦)의 아픔을 딛고 돌아갔지만 책을 멀리하는 법이 없었고 절망하지 않았다. 그들은 때로는 산을 오르고 때로는 물을 건너며 이 산하의 곳곳을 평생토록 돌아다녔다. 그렇게 산수간을 유랑하면서도 그 언저리에서 고달픈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사랑할 줄 알았다. 때로는 매화와 대나무를 심고 난을 기르고 때로는 차를 달여 마시거나 달빛 아래서 술잔도 기울였다. 이러한 풍류정신을 오늘 이 난세에 되살리자는 것이다. 너무 그렇게 흰눈을 부릅뜬 채 악만 쓰지말고 잠시 가쁜 숨을 고르며 멋과 여유를 즐기는 슬기를 되찾아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이 거칠고 혼란스러운 염량세태(炎凉世態)의 난세를 살아넘기는 길이 될 것이다. /황원갑<소설가·한국풍류사연구회장>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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