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바둑영웅전 제4보

바둑영웅전 제4보애기가였던 문인들 60년대에 들어와서는 바둑 인구가 부쩍 늘고 도처에 기원이 생겼다. 특히 문인들 가운데 애기가들이 많았다. 월간 「기원(棋苑)」에서 1964년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문인들의 급수 분포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최강자는 시인 이인석(李仁石)으로 무적이었고 아마추어 유단자급(1급에서 3급까지)이 10여명 있었다. 시인 신동문(辛東門)이 그 그룹의 선두였고 곽하신(郭夏信), 최요안(崔要安), 이종환(李鐘桓), 인태성(印泰星), 신석초(申石艸), 최태호(崔台鎬), 김정각(金正珏)이 그 뒤를 따랐다. 4급부터 6급까지의 인사들이 수효로는 가장 많았다. 서기원(徐基源), 이형기(李泂基), 조연현(趙演鉉), 김윤성(金潤成), 정태용(鄭泰鎔), 성찬경(成贊慶), 이경남(李敬南), 천이두(千二斗), 이영일(李英一), 홍사중(洪思重), 김경각(金京珏), 정비석(鄭飛石), 구상(具常), 백종구(白鍾拘), 신경림(申庚林), 박재삼(朴在森) 등이 여기 속했다. 7급 이하의 문인으로는 천상병(千祥炳), 이동주(李東柱), 신기선(申基宣), 강민(姜敏), 김광림(金光林), 문덕수(文德守), 이성교(李姓敎), 정인영(鄭麟永), 강용준(姜龍俊), 황명걸(黃明杰), 한남철(韓南哲)이 그들이었다. 후일에 「관철동의 디오게네스」로 불린 평론가 민병산(閔丙山)은 이 기록에는 보이지 않지만 64년 무렵에 3급 정도였다고 한다. 흑49는 완착. 백50을 당해 흑이 심히 거북하다. 흑49로는 무조건 「가」에 지켰어야 했다. 백「나」의 침입수가 있음직 하지만 흑 「다」로 응수하여 아무 수도 나지 않는다. 노승일·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0/08/23 20:34 ◀ 이전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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