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 산책] 손 없는 날과 손님 문화

김일권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전공 교수


연말이나 이사철이 되면 종종 언론매체로부터 자문 요청이 들어온다. 해 바뀜의 천문학적 해석이나 띠·절기 변화 등에 대한 시간학적 의미를 알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특히 '손 없는 날'에 대한 관심은 끊이질 않는다. 분명 이러한 길일의 속신은 과거 전근대사회에서나 유행하던 것인데 현대에서도 여전히 숨을 쉬고 있다. 더구나 이사 비용이 늘어나고 민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일종의 사회현상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손 없는 날은 비단 이사일 뿐만 아니라 결혼일 등 우리 일생의 중대사에 자주 개입하는 민속학적 문화 인자다. 이런 문화는 언제 생겨났고 왜 그런 논리가 만들어진 것일까. 손 없는 날은 일단 택일의 풍속으로 시간학 측면에서 분석된다.

'손님=비예측적 존재' 인식서 출발

손 없다 할 때 손은 다 알다시피 손님을 뜻한다. 보통 손님은 반가운 손님이라서 잘 대접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문화가 지켜온 관습이다. 그런데 왜 손이 없는 날을 길일이라 하는 것인가. 여기에는 손님이 지니는 양면적 원리가 깔려 있다. 하늘의 별들을 관찰하고 체계화시키던 고대 천문학에서 대개의 별들은 그 위치를 예측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혜성이라든가 초신성 같은 별들은 어느 날 갑자기 밤하늘을 환하게 때로 몇 달간 비치다 사라지곤 해 도무지 그 정체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고대인들은 이렇게 주기가 예측되지 않는 별들을 일괄로 묶어 손님별이란 뜻의 객성이라 이름 짓고 관리했다. 지금에서야 핼리혜성처럼 그 주기가 파악돼 태양계의 한 가족으로 받아들임에 따라 그 정체에 대한 궁금증과 불안감이 해소됐지만 전통시대에서 객성의 출현은 제왕에게는 변고를, 나아가 국가전복의 징조로까지 확대 해석되는 존재여서 두려움 내지 불안감을 조장하는 대상이 됐던 것이다. 이처럼 손님은 비예측적인 존재다. 따라서 머무는 존재는 아니니 돌아갈 때까지 잘 대접해 무탈하면 된다는 양면의 인식이 부여된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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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식이 계속 발달해 시간과 방위에도 객성처럼 흉성인 경우가 있고 그 반대로 길일인 경우가 있다는 논리로 확장된다. 조선 시대에 특히 문화가 가장 융성했다는 18세기 영조, 정조 시대 이런 택일 택방의 속신 문화가 더욱 흥기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정조가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왕릉 건설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 관상감 내의 풍수학이나 명과학 등을 장려했는데 이런 흐름이 지금에까지 이어져 손 없는 날의 문화가 지속되는 것이라 보인다.

가정 안온 바라는 심미적 원리 내재

다만 전통시대에 손 없는 날을 잡는 방식이 매우 복잡했다면 지금은 상당히 단순화돼 음력으로 날짜의 끝수가 9일과 10일 계열이 되는 날이면 자동으로 손 없는 날로 삼고 있다.

우리는 일생을 살면서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하는 때를 어김없이 맞는다. 새해 벽두부터 갖가지 크고 작은 결심을 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전과 이후에 삶의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자신의 일생사에서 보면 일종의 변곡점인 시기인 것이다. 결혼은 인륜대사이며 이사는 가정의 안온이 걸려 있다. 이 때문에 가능하다면 좋은 날을 잡아 일생의 중대사를 가장 축복된 분위기 속에서 치르고 싶어 한다. 이러한 인간의 심미적 원리가 시간학에까지 투영된 문화가 손 없는 날의 민속으로 살아 있는 것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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