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유통 인사이드] 높아진 소비자 권리 의식의 사생아 '블랙컨슈머'

악덕 소비자에 기업들 속앓이<br> '서비스 최우선' 강조하는 업체들 허점 노려 기승<br>돈 뜯어내기가 대부분… 경쟁사 해코지 목적도<br> "최대한 쉬쉬하며 해결"이 블랙컨슈머 양산 원인<br>"기업들 민원 전담 조직 확충등 공동 대응 필요"

예전보다 높아진 소비자의 권익의식을 기업들이 따라잡지 못하는 '지체현상' 이 블랙컨슈머를 낳는 토양으로 작용 하고 있다. 한 대형마트의 고객상담코너가 손님들로 붐비는 모습(기사의 특정내용과 관련 없음).


"포인트 적립 안됐으니 현금으로 보상하라"
"△△본사죠? 서비스가 너무 맘에 안들어요"
지난달 경기 안성시 A마트 의류매장에 근무하는 협력업체 직원 B씨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한 30대 부부 고객의 결제를 돕는 과정에서 실수로 포인트 적립이 안 돼 두 번 만에 성공을 하자 "서비스가 안 좋다"며 이 고객이 다짜고짜 폭언을 퍼부은 것. 급기야 매장 매니저가 사태 진화에 나서며 2만원 짜리 상품권을 제공했지만 부부는'내가 우습게 보이냐'며 당당히 현금 80만원을 요구했다. 심지어 이 부부는 해당 업체 본사에까지 전화해 욕설을 퍼부어 27만원 상당의 고급 재킷 두 벌을 받아내기까지 했다. 블랙컨슈머(Black Consumer)들의 횡포에 유통ㆍ제조업체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서비스 최우선'을 강조하는 기업들의 특성상 고객의 무리한 요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것이라는 허점을 노린 악의적인 소비자들의 행태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식품 업계 관계자는 "블랙컨슈머는 높아진 소비자 권리 의식에 비례해 기업들도 소비자 권익을 최대한 배려 하고자 하는 상황에서 피어난 독버섯 같은 존재"라며 "블랙컨슈머가 활개를 치게 되면, 결국 기업과 소비자간 불신의 골이 깊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근절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블랙컨슈머의 다양한 스펙트럼=블랙컨슈머는 기업을 상대로 구입한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고의적인 악성민원을 제기하는 소비자를 말한다. 한 마디로 기업을 봉으로 여기는 소비자들을 블랙 컨슈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블랙컨슈머를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지난 2008년 돈을 뜯어내기 위해 단팥빵에 지렁이를 넣다 걸린 지렁이 단팥빵 사례처럼 명백한 범죄 행위가 드러난 경우 사법 처리로 단죄하면 되지만, 법의 잣대를 들이밀기 애매한 사건이 대부분이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제품의 이상이나 단순 변심 등을 이유로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하는 고객은 하루에도 수십 명에 달한다"며 "다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고객들도 많지만 이들의 행동이 정상적인 이의 제기 수준을 넘어선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블랙 컨슈머들이 제기하는 민원의 이유는 돈을 뜯어내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다만 처음부터 보상금을 노린 상습적인 블랙컨슈머도 있지만, 기업의 응대가 흡족하지 않을 경우 반발 심리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도 있다. 또 경쟁사 제품에 대한 평판을 악화시킬 목적으로 한 스파이형 블랙컨슈머도 경쟁이 치열한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유형이다. 지난 연말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 간에 벌어진 쥐 식빵 파동도 금품 수수보단 경쟁 베이커리 업체를 해코지할 목적으로 기획된 전형적인 스파이 형으로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악의적인 의도를 갖고 기업에 접근하지만, 그 과정을 살펴보면 블랙컨슈머에는 생각 보다 다양한 유형이 있다. ◇블랙컨슈머, 높아진 소비자 권리의식의 사생아=그렇다면 블랙컨슈머는 늘어나는 추세일까. 이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다. 기업 입장에서는 제품과 관련한 민원은 기밀사항이기도 하거니와 블랙컨슈머의 범주를 어디까지 볼 것인 지에 대한 견해도 입장에 따라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또 하자가 있는 제품에 대해 소비자가 반품ㆍ교환 이외에 도의적 차원에서 사례금을 요구할 경우 어느 선부터가 무리한 수준인 지를 말하기도 어렵다. 예컨대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한 한국소비자원 등과 같은 단체에서는 블랙 컨슈머라는 용어를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하지만, 악의적인 고객에게 당해본 기업들은 정당한 민원 제기 조차도 색안경을 끼고 보기 일쑤다. 다만 기업에서 고객 민원을 담당하는 직원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악성 민원 수는 지난 2008년 생쥐깡 파동 무렵에 정점을 찍은 뒤 차츰 줄어드는 양상이다. 하지만 이도 데이터로 확실히 뒷받침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기업이 제공한 재화 및 서비스로 인한 소비자 피해 사례 중 한국소비자원에서 중재에 나선 피해구제 건수는 지난 2008년 1만9,327건에서 2010년에는 2만3,374건으로 20%늘었다. 소비자로서 기업에게 바라는 서비스나 품질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블랙컨슈머들의 경우 통상 소비자 단체에 피해 사례를 알리기 보다는 직접 기업들과 '협박'성 접촉을 하는 게 대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데이터 역시 블랙컨슈머의 증감 추이를 보여주기엔 부족하지만 어찌됐던 블랙컨슈머들이 활개칠 수 있는 비즈니스 토양이 조성된 것은 사실이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인터넷으로 소비자가 식품위생법 등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경우도 많아지면서 서비스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다"며 "반면 기업들은 아직 소비자의 수준을 못 따라잡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업"무조건 저자세는 옛날 얘기라지만…"=기업들에게 블랙컨슈머는 여전히 곤혹스러운 존재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도 한다. 식품 업체 관계자는 "블랙컨슈머와 일반 피해자를 구별하기 어렵고, 혹여 말이 새 나갈 경우 제품 및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이 불가피해 최대한 쉬쉬하며 해결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음성적 대응이 블랙컨슈머를 양산하는 악순환의 중간고리라는 점에서 기업들의 대응도 보다 매뉴얼화, 시스템화되고 있다. 여기에는 제조공정의 자동화, 품질 관리 등으로 제품 불량률이 예전에 비해 크게 줄어들고, 민원 처리 전담 조직도 대거 확충한 데 따른 자신감이 자리하고 있다. 일례로 국내 식품의 평균적인 불량품 발생률은 3ppm(100만개 중에 3개가 불량품)으로, 미국, 일본 등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은 수준에 올라와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최근에는 기업들도 고객 신고가 들어왔다고 해서 무조건 저자세로 나오지는 않는다. 식품 업계 관계자는 "신고가 들어와도 반품 말고는 뾰족한 조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상황에서 고객이 돈을 요구할 경우는 의심부터 된다"고 말했다. 그는 "아예 거짓으로 일을 꾸미는 명백한 블랙 컨슈머를 제외한 대부분의 이물질 신고는 원인이 규명되지 못하고 종결된다"며 "기업 입장에서 보면 제품에 무슨 이상한 낌새가 있다 싶으면 이런 저런 가능성을 제대로 따져 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기업에게 항의부터 하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반면 직접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백화점과 대형마트 쪽의 기류는 이와 조금 다르다. 고객이 애매모호한 서비스 등을 문제 삼아 다짜고짜 시비를 걸면 속수무책이라는 얘기다. 이승창 중앙대학교 산업경제학과 교수는 "블랙컨슈머에게 지불되는 부당한 비용은 결국 장기적으로 건전한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며 "개별 기업의 대처가 힘든 만큼 관련 업체들이 공동 대응해 블랙컨슈머 관리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생계형'서 '산업스파이형'까지… 진화하는 블랙컨슈머
알뜰형- 필요할때 잠깐쓰고 환불
생계형- "음식 맛 없다" 지불 거부
시대 변화에 맞춰 블랙컨슈머도 진화하고 있다. 수법도 다양해졌을 뿐 아니라 최근 어려운 세태를 반영한 '생계형'이나 업무 목적을 위한 '산업스파이'형까지 나타나고 있는 지경이다. 우선 금전적인 이득을 노린 반품 요구가 빈번하다. 할인 행사중인 매장에서 물건을 산 뒤 나중에 같은 브랜드의 다른 매장을 찾아 정상가 제품으로 반품을 받거나 아예 환불해 가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매장들이 고객 불편을 이유로 굳이 구매했을 때의 영수증을 확인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한 사례다. 이와 유사하게 홈쇼핑에서는 반품을 요구한 고객에게 우선 환불해 준 뒤 고객이 반송한 제품을 확인하니 값이 싼 다른 상품을 넣어 보낸 경우도 종종 등장한다. '알뜰족'도 빼놓을 수 없다. 자기가 필요할 때 제품을 구입했다 잠깐 사용하고 나중에 자연스럽게 환불하는 경우로 이 때문에 백화점에서는 연말에 팔렸던 보석류 중 일부가 연초에 다시 매장에 돌아온다. 화장품을 살때 샘플을 잔뜩 받아가고는 며칠뒤 '피부에 안 맞는다'며 제품을 환불 받는 '샘플 약탈족'도 있다. 치솟는 물가 탓에 생계형 블랙컨슈머도 등장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점포 식당가에서 식사를 마친 뒤 '음식 맛이 없다'며 지불을 거부하는 고객이 늘었다"며 "대부분 10만원 이하의 소액이다 보니 대응하기도 힘들어 그냥 돌려보낸다"고 말했다. 백화점 패션 브랜드들이 일제히 신상품을 내놓는 시즌에 맞춰 매장을 돌며 제품을 잔뜩 사간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고스란히 환불하는 이들도 있다. 보세 패션업체들이 유명 브랜드의 디자인을 '카피'하기 위한 것인데, 구입과 환불을 각각 다른 사람이 하는 방식으로 판매원의 눈을 속이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최근에는 객관적인 보상액 산정이 어려운 '정신적인 피해'를 주장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직원의 불친절로 인한 스트레스로 유산했다며 보상금을 요구하는 사례부터 마트에서 파는 초밥을 먹고 수험생이 복통을 앓았으니 병원비 뿐 아니라 정신적 피해액과 과외비까지 달라는 고객도 있을 정도다. 업계 관계자는 "요구 조건도 과거에는 수십 만원 정도였다면 요즘에는 정신적 피해 보상을 명목으로 최하 500만원 이상을 부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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