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로에 선 외환관리] <4> 미국의 환율정책

'달러 패권주의' 도전에 강경 대응<br>전세계가 弱달러 기조에 암묵적 동조 기대<br>월街 "BOK쇼크는 美의 한국에 대한 심판"

지난 2월15일 미국 상원 재정위원회에 6페이지의 법안(S377)이 하나 상정됐다. 조지프 리버먼 상원의원(민주당)을 포함한 일부 의원들이 중국과 일본ㆍ대만과 함께 한국을 환율조작 대상국가로 지목, 이들 국가가 대규모 외환시장 개입에 나서 미국 제조업에 피해를 줄 경우 미국과 국제기구가 함께 경제 제재에 나설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다. 아시아 국사들이 환율정책을 놓고 행여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할 경우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으름장인 셈이다. 아직 법안이 통과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우리 정부를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의 외환관리 운영과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22일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든 ‘BOK쇼크’ 이후 뉴욕의 월가(街) 전문가들은 늘어나는 한국 외환보유규모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면서도 외환보유로 환율조정에 나서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원화가치 안정을 위한 정부의 환율정책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보유외환으로 환율조정은 안된다=BOK쇼크 이후 그동안 기축통화인 달러와 엔화ㆍ유로 등에 밀려 변방에 있었던 한국 원화가 세계 금융시장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중심무대로 들어섰다. 뉴욕뿐 아니라 홍콩ㆍ도쿄ㆍ런던 등에 기반을 둔 외환딜러들도 한국은행 지사들과 전화통화 횟수를 늘리며 한국은행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월가 전문가들은 달러약세가 세계적인 대세로 굳어지는 상황에서 외환보유로 환율조정에 나서는 한국정부의 외환정책은 내재적인 한계가 있다는 시각이다. 국내총생산(GDP)의 10%에 달한 미국의 쌍둥이적자로 달러약세가 구조적인 현상이 되고 있고 일본과 유럽 국가들도 실질적인 시장개입에 나서지 않는 등 사실상 암묵적인 동의를 한 상태에서 한국은행이 환율안정을 위해 ‘역풍개입(Lean against Wind)’에 나서봤자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는 설명이다. 피터 김 와코비아증권 부사장은 “맨해튼 서쪽을 도도하게 흐르는 허드슨강의 큰 물줄기를 돌리려고 삽질을 해봤자 큰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며 “한국의 외환정책은 기조적인 달러약세 현상에서는 무용지물”이라고 지적했다. 다트머스대학교의 데이비드 강 교수(국제경제)도 “한국은행이 갑작스런 환율변동에 따른 투기세력을 방어하기 위해 스무드 오퍼레이션(미세조정)은 취할 수 있겠지만 대규모 시장개입에 나설 여지는 적고, 이 경우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세조정 이외의 외환시장 개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데 한국 외환정책의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외환보유는 다다익선(多多益善)=국내에서는 외화보유의 적정규모를 놓고 한국은행과 재경부간 의견 마찰이 있지만 월가 전문가들은 인위적인 시장개입에 따른 외환축적이 아니라 무역과 해외자본 유입에 따른 외환보유는 많을수록 좋다는 입장이다.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가장 긍정적인 신호는 외환보유고가 급증했다는 점이며 한국의 외환보유는 ‘위기펀드(Contingency Fund)’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북한붕괴 등 외부 돌발변수에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어벽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월가 헤지펀드의 한 관계자는 “달러약세 기조가 나타나면서 한국 보유외환에 대한 비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지만 막대한 외환보유로 해외 투자자본이 한국으로 유입되는 보다 긍정적인 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월가 전문가들은 대규모 외환보유의 플러스 측면을 강조하면서도 한국 외환관리정책의 문제점으로 ▦과다한 통안채와 환시채 발행 ▦내수시장 취약 ▦외환관리의 이중화 방안 등을 꼽는다. 무디스 등 신용평가기관들은 한국정부가 환율안정을 위해 본원통화를 찍어내고 시중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통화안정채권이나 외환시장안정용 국고채(환시채)를 발행하면서 정부 부채가 높아지고 있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채권발행을 통한 환율안정은 정부 부채 증가와 금리인상의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점에 외환정책의 딜레마가 있다는 설명이다. ◇수출ㆍ내수 균형 갖춘 경제구조로 전환해야=환율대책을 위해 외환관리를 이원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응이다. 대형 헤지펀드의 한 관계자는 “한국은행 외환보유고에서 일정 외환이 한국투자공사(KIC)로 빠져나가는 것은 해외 주식과 채권 투자자들에게는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또 일부에서는 한국은행과 재경부가 외환관리의 주도권을 놓고 다투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어 체계적인 외환운영에 대한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환율 알레르기 반응’을 줄이기 위해서는 수출중심의 경제구조를 내수 균형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달러약세가 굳어지는 현실에서 수출중심의 한국경제는 달러 추이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경제’가 될 수밖에 없는 만큼 산업구조의 패러다임을 바꿔 완충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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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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