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경제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2년 내에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장담이 무색하게 루블화 가치 폭락으로 촉발된 동요는 러시아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외환시장에 이어 러시아 국내 자금시장에 빨간불이 들어왔고 제너럴모터스(GM), 이케아 등 글로벌 제조업체들의 대(對)러시아 판매 중단이 이어지고 있다.
18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러시아 국내 은행 간 3개월 대출금리는 이날 28.3%를 기록해 지난 9년 새 최대치를 기록했다. 대출시 담보물로 제공하는 러시아 채권 및 주식 가치가 급격히 하락한 데 따른 것이다. FT는 "경제불안의 초점이 외환시장에서 국내 자금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올레그 코우즈민 르네상스캐피털 이코노미스트의 말을 전하면서 "(최근의) 루블화 하락이 러시아 경제 전체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은행들도 러시아에서 속속 발을 빼고 있다. 러시아 업체를 대상으로 한 외국계 은행들의 신디케이트론(2개 이상 은행이 차관단을 형성해 중장기 자금을 융자하는 집단대출) 규모는 12월 중순 현재 전년 대비 14% 수준으로 떨어졌다. 러시아 부채자본시장(DCM)에서의 글로벌 은행 거래 규모 또한 전년 대비 82% 줄어들었다. JP모건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최근 올 3·4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올 들어 지난 9월까지 러시아 자산 익스포저(위험노출액)를 각각 40%, 26% 이상 줄였다고 밝혔다.
금융시장에서의 불안감은 실물경제로 옮겨가고 있다. 16일 러시아에서의 제품 판매 중단을 선언한 애플에 이어 이날 GM·재규어랜드로버·아우디 등이 러시아로의 자동차 선적을 잠정 중단했다. 루블화 가치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대러 수출이 오히려 손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세계 최대 가구업체 이케아도 이날 판매 중단 결정을 내리면서 가격을 재조정한 뒤 영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최근 러시아 당국은 곡물 수출에 대한 제한조치를 내렸다. 곡물업체들이 달러를 벌어들일 목적으로 국내 판매 대신 수출량을 급격하게 늘림에 따라 내수 공급량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세계 4위의 밀 수출국인 러시아의 이 같은 조치는 국제 곡물 가격 상승을 부채질할 수 있다고 FT는 설명했다. 실제 글로벌 원자재시장에서 이날 밀 가격은 7개월 새 최대치까지 상승했다.
전날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최근의 경제위기에 대한 서방권의 책임론을 주장하면서 러시아 경제가 2년 안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미국과 EU 등은 압박 수위를 더욱 높였다. EU는 20일부터 회원국 기업을 대상으로 올 3월 러시아가 강제병합한 크림반도 내에서 투자 및 관광 상품의 판매를 금지하는 내용의 대러 추가 제재를 내놓았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러시아와 대립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군사 지원을 확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