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1월27일] 클로비스 1세


프랑스와 독일. 유럽연합(EU)을 이끄는 축이다. 두 나라의 국내총생산(GDP) 합계는 27개 국가로 구성된 EU 역내총생산의 3분의1에 이른다. 양국 사이도 더 없이 긴밀하다. 합동여단을 상설 운영할 정도다. 나폴레옹 전쟁부터 2차 대전까지 150년간 큰 전쟁만 네 차례 치른 두 나라의 찰떡공조에는 유럽 평화라는 현실적 이유와 함께 프랑크 왕국이라는 공동의 역사가 깔려 있다. 프랑크 왕국은 게르만의 일족인 프랑크족의 클로비스 1세가 창건한 왕국. 메로빙거 왕조를 세운 클로비스 1세는 게르만족 특유의 호전성과 기독교를 융합한 최초의 인물로도 유명하다. 350년 후 나타나는 샤를마뉴 대제도 스페인과 이탈리아까지 포함해 유럽의 공동 조상으로 꼽히지만 프랑스와 독일만의 공동 조상은 클로비스 1세다. 클로비스라는 이름은 프랑스의 루이와 독일의 루드비히에 남아 있다. 다른 부족과의 전쟁을 앞두고 부하 3,000여명과 함께 정통 기독교로 개종한 그는 496년 세례를 받을 때 전쟁을 담당하는 오른손은 머리를 얹은 채 물에 몸을 담갔다고 전해진다. 전쟁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는 뜻에서다. 서구문명의 특징인 성서와 칼의 융합이 클로비스 1세 때 더욱 뚜렷해진 셈이다. 평생을 전투로 보낸 클로비스 1세는 511년 11월27일 45세로 사망해 파리에 묻힐 때까지 왕권 안정에 전력을 기울였다. 아들 4명에게 권좌를 넘겨주기 위해 친척들을 몰살시킨 적도 있지만 왕조의 수명은 불과 269년 만에 끊겼다. 대신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그의 흔적이 있다. 와인이다. 이탈리아의 포도를 프랑스 전역에 대거 옮겨 심은 그는 게르만족 최초의 성문법인 살라카 법전(508년)에도 포도밭에 대한 엄격한 관리지침을 담았다. 피의 역사를 담았음에도 와인은 빛깔은 곱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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