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 개병비(開甁費)

중국 한(漢)나라의 고조 유방(劉邦)의 천하통일 대업을 도운 명장 번쾌(樊噲)는 대단한 술꾼이었다. 초(楚) 패왕 항우(項羽)가 유방의 목숨을 노렸던 홍문(鴻門)의 연회에서 한말의 술을 권하자 번쾌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술 몇 말쯤이야 사양하겠냐”며 호기롭게 술을 들이켰다. 번쾌의 호탕함에 살기등등했던 연회의 분위기는 금세 누그러졌고 백척간두에 섰던 유방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렇게 생긴 ‘두주불사(斗酒不辭)’는 요즘 엄청난 주량을 표현하는 말로 쓰이지만 본래는 번쾌처럼 호방한 장군의 기개를 칭송하는 표현이었다. 당(唐)나라의 시인 이백(李白)은 ‘시선(詩仙)’이면서 음주에 관한 한 ‘주선(酒仙)’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다. 하루는 이백이 현종(玄宗)의 부름을 받았는데 술에 잔뜩 취해 당대 최고의 권력자였던 환관 고력사(高力士)가 손수 신발을 벗겨줘야 시를 짓겠노라고 객기를 부렸다. 고력사의 미움을 산 이백은 이 일로 평생 초야에 묻히는 처지가 됐지만 사람들은 그의 호방한 성품과 작풍을 높이 평가했다. 당 현종 때 문필가이자 이백의 친구였던 장욱(張旭) 역시 만취 상태가 아니면 글다운 글을 쓰지 못하는 고주망태였다. 그는 술이 깨면 글을 썼다는 사실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구제불능 수준이었지만 자유분방한 ‘광필(狂筆)’이라는 필체를 세상에 남겼다. 술에 관한 이런 역사 때문인지 중국에는 지금도 음식점에 자신이 좋아하는 술을 자유롭게 가져가 마셔도 되는 관대한 음주문화가 남아 있다. 술을 좋아하는 주당들이야 식당에서 한병에 몇 만원씩 받는 술을 단돈 몇 천원에 양껏 마실 수 있으니 좋았지만 속수무책으로 매상을 까먹는 식당 주인들은 울분만 삭여 왔다. 급기야 참다 못한 식당 주인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섰다. 지난 23일 중국의 전국 35개 요식업협회는 “술을 가져오는 손님에게는 소매가격과 음식점에서 받는 술값의 차액만큼 서비스료 명목으로 ‘개병비(開甁費)’를 받겠다”고 결의했다. 이에 주당들은 “술병 따주는 게 무슨 서비스냐”며 펄쩍 뛰었고 소비자단체들은 “요식업소들이 지나치게 높은 술값을 먼저 내려야 한다”며 거들었다. 베이징의 한 지방법원은 최근 “개병비는 소비자의 공정한 거래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주당들의 손을 들어주기까지 했다. 전통적으로 음주권리를 존중해온 중국에서 ‘개병비 논란’이 불거진 것은 시장 경제의 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러나 상인들의 ‘영업권’이 다중의 목소리에 위축되는 걸 보면 중국의 시장 경제는 아직 성숙기까지 도달하진 못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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