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바람이 새는 자전거

최근 경영자들의 한국 경제, 특히 제조업 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97년 외환위기 때 유행한 ‘넛크래커’라는 단어가 연구보고서에 빈번하게 등장하고 중요한 시점마다 경영 화두를 제시해온 이건희 삼성 회장은 ‘샌드위치 위기론’을,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제조업 선순환 고리의 약화’를 언급했다. 더 설명할 필요 없이 제조업은 한 나라 경제의 뿌리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소규모 개방경제인 경우 제조업은 수출을 견인하고 금융ㆍ물류 등 서비스산업 발전의 촉매 역할을 한다. 또한 제조업은 연구개발(R&D) 투자의 80%를 차지해 혁신의 중심 역할을 하고 고숙련 서비스 직종을 창출한다. 제조업의 중요성은 고용에 있어서 더욱 두드러진다. 경제의 선진화에 따라 늘어나는 서비스 업종의 고용은 대부분 급여가 낮고 거의 시간제이며, 그나마 일부 젊은이들에게만 문이 열려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지만 제조업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질 낮은 일자리가 사회를 지배하게 되면 구매력이 낮아져 기업 또한 경쟁력을 잃고 종국에는 국가 경제가 취약해진다. 한국을 대표하는 경영자들은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인한 나라 경제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샌드위치’와 ‘넛크래커’가 우리 제조업의 위기 상황을 상징하고 대변하는 단어로 고착화하는 데는 아쉬움이 있다. 우선 ‘샌드위치’를 보자. 우리 제조업이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개의 식빵 사이에 놓인 햄과 야채라는 이 표현은 샌드위치의 맛과 가치가 바로 이 햄과 야채로 결정된다는 점에서 우리 경제의 위기 상황을 표현하는 데 부족함이 있다. ‘넛크래커’도 마찬가지다. 이 말은 우리 기업이 일본에 비해서는 기술이 부족하고 중국 등 신흥개발국에 비해서는 원가경쟁력이 부족해 불안하고 취약한 상태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으나 중간 품질, 중간 가격을 원하는 세분 시장의 존재를 간과한다는 문제가 있다. 물론 고품질의 일본 제품이 가격경쟁력까지 갖춘다든지 저렴한 중국 제품이 품질까지 높인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겠으나 각국의 기술 격차와 경쟁전략의 차이로 인해 이러한 현상은 쉽게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제조업의 위기 상황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단어는 무엇일까. 앞서 경영자들도 언급했듯이 우리나라 제조업 경쟁력 위기의 원인은 정부의 경직된 정책과 인재 확보의 실패에 있다. 마이클 포터는 한 나라가 어떤 산업에서 경쟁력을 가질지를 예측하려면 그 나라의 우수한 인재가 어디로 가는지를 보라고 했다. 기업을 둘러싼 환경보다는 우수한 인재가 산업의 경쟁력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우수한 인재가 모이면 신기술의 개발과 혁신이 일어나고 이를 통해 기업은 질 높은 제품을 낮은 가격에 생산해 성장, 번영하고 이는 종업원 개인의 발전으로 이어져 다시 우수한 인재가 모이는 선순환 과정을 밟게 되는 것이다. 우리 제조업의 문제는 외환위기 이후 우수한 인재가 의료ㆍ법률ㆍ엔터테인먼트 등 화려한 서비스업, 혹은 안전한 공무원 직으로 모이고 이공계와 제조업을 기피하고 있다는 데 있다. 비유하자면 중국이 저렴한 노동력과 거대한 시장이라는 크고 튼튼한 두 바퀴로, 일본이 제조업 중시 문화와 적극적인 정부 지원이라는 탱탱한 두 바퀴로 가속도를 내며 달리고 있다면 우리의 제조업은 지금 우수 인재의 제조업 기피로 ‘바람이 새는 자전거’ 페달을 힘겹게 밟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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