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뉴스 포커스] 폭스바겐 사기극까지 낳은 '연비의 경제학'

"연비가 곧 기술력" 1등 욕심에 신뢰 와르르

무게 줄이고 엔진 변속기 개발

업계 연구에 수십조 투자했지만 기술이 연비 규제 못 따라가자

세계 1위업체도 SW활용 조작


현대기아차가 4년간 600억원을 투입해 개발한 7단 DCT 모습. /사진제공=현대차

재규어의 인텐시브 모노코크 차체 모습. 차체의 75% 이상을 알루미늄을 사용해 무게를 대폭 줄였다. /사진제공=재규어랜드로버 코리아

하이브리드·디젤 이은 '3차 연비전쟁' 예고

현대기아차 600억 들인 변속기로 연비 최고10.9%↑


푸조시트로엥은 압축공기로 모터 돌리는 기술 선봬

세계무대에서도 최상위 자동차 메이커인 폭스바겐이 믿기 힘든 배기가스 사기극을 벌인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적어도 품질 측면에서는 이미 검증됐다고 봤고 마케팅을 통한 판매확대 작전만 펴면 된다고 믿어왔기에 전 세계 소비자들의 충격은 더하다.

국내 자동차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이번 사태의 배경을 좀 더 정밀하게 들여다보면 글로벌 자동차 업체 간의 치열한 '연비 전쟁'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폭스바겐은 연비 규제를 기술이 따라가지 못하자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사기극을 벌였다.

이른바 '연비의 경제학'에 톱메이커조차 충동을 이겨내지 못한 셈이다.

실제로 21세기 자동차 업계의 가장 큰 화두는 연비다. 연비는 곧 그 브랜드의 기술력을 의미한다. 전 세계 자동차 업체들은 강화되는 각국 연비 규제에 대응해 수십조원의 투자를 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개발(R&D)에 나서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그동안 국내에서 수입차들의 거센 공세를 막아내는 데 힘겨워한 것 역시 연비 측면에서 경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최근 내놓은 신형 아반떼를 통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연비를 자랑했고 신차 발표회 또한 호텔이 아니라 '기술의 심장'인 남양연구소를 택했다.

그렇다면 자동차 메이커들의 생과 사를 가르는 연비의 경제학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연비가 뭐길래…기만장치까지 동원=지난 1908년 헨리 포드의 첫 양산 자동차 '모델 T'가 등장한 후 65년 동안 자동차 업계의 화두는 '속도'였다. 누가 얼마나 더 힘 좋고 빠른 차를 만들 수 있는지를 두고 진검 승부를 벌였다.

하지만 1973년 1차 오일쇼크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소비자들은 자동차의 '연비'를 따지기 시작했다.


1975년 미국 정부가 1년 동안 기업이 생산한 자동차의 평균 연비를 규제하는 'CAFE(Corporate Average Fuel Economy)' 제도를 통해 자동차의 연비와 배기가스를 규제하기 시작하면서 연비 전쟁은 본격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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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들어서는 연비가 자동차 구입의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됐다. 연비가 곧 기술력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1차 연비 전쟁의 승자는 도요타였다. 1997년 12월 도요타는 가솔린과 전기모터를 동시에 사용해 주행 거리를 늘린 하이브리드차를 선보였다. 1세대 '프리우스'는 ℓ당 최고 17㎞의 주행 거리를 자랑하며 전 세계 자동차 업계에 큰 충격을 줬다. 출시 첫해 판매량 300대에 불과했던 도요타 하이브리드차는 지난해 126만대까지 성장했다. 프리우스 4세대 모델의 연비는 ℓ당 40㎞다.

하이브리드는 배터리 가격이 비싼 게 흠이었다. 독일 자동차 업체들은 디젤 차량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디젤 특유의 강력한 주행 성능에 ℓ당 평균 15㎞ 이상의 고연비는 유럽 등 주요 시장의 소비자 마음을 훔쳤다.

질소산화물 등 유해가스가 많이 나오는 것이 단점이었다. 하지만 폭스바겐을 필두로 한 독일 업체들은 기술력으로 배기가스를 줄인 '클린 디젤'을 선보였다. 클린 디젤을 원동력으로 폭스바겐그룹은 지난해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폭스바겐이 연비를 높이기 위해 질소산화물 등 배기가스 배출량을 조작하는 기만장치를 사용한 것이 들통 나면서 클린 디젤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모습이다.

◇무게 줄이고 엔진 변속기 개발 한창=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연비 개선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4년간 600억원을 들여 개발한 7단 DCT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7단 DCT는 2개의 변속기가 홀수와 짝수단의 변속을 맡아 효율성을 높였다. 올해 출시된 현대·기아차의 엑센트·벨로스터·i30·i40·투싼·쏘울·카렌스·쏘나타·K5 등이 7단 DCT가 적용된 차종으로 연비가 최대 10.9% 향상됐다.

푸조시트로엥(PSA)은 하이브리드 에어 기술을 내세웠다. 배터리로 전기 모터를 돌리는 대신 압축 공기가 모터를 돌려 차를 달릴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PSA는 2010년부터 프랑스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아 보쉬·포레시아 등의 업체와 함께 하이브리드 에어를 개발했다. 지난해에는 ℓ당 50㎞를 달리는 '푸조 208 하이브리드 에어' 모델을 선보였다.

차량 무게 줄이기에 주력하는 업체들도 있다. 재규어는 준중형 모델 'XE'의 차체 75%를 알루미늄으로 제작했다. 차체를 가볍게 해 연비를 높였다. 연비는 ℓ당 31㎞(유럽기준)다.

◇강화되는 연비 규제에 고민 깊어지는 업체들=각국 정부는 연비 관련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CAFE를 통해 올해 ℓ당 평균 15.4㎞의 연비를 오는 2025년까지 ℓ당 22.3㎞로 높이도록 하고 있다. 유럽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규제하고 있다. 올해 ㎞당 130g인 기준을 2021년까지 ㎞당 95g로 강화한다. 중국은 내년부터 2020년까지 적용될 4단계 연비 규제를 통해 ℓ당 14.5㎞의 연비를 2020년까지 ℓ당 20㎞로 높이도록 했다. 한국 정부는 내년부터 202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당 97g, 연비는 ℓ당 24.3㎞로 맞추도록 하고 있다.

자동차 업체들은 연비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 과징금을 내거나 심할 경우 판매 중단까지 각오해야 한다. 업체들이 앞다퉈 고연비 차량 개발에 나서는 이유다. 현대기아차는 2020년까지 평균연비를 25% 높이기 위해 2018년까지 R&D에 31조6,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폭스바겐은 올해부터 2019년까지 5년간 856억유로 투자를 밝힌 바 있다. 2020년까지는 친환경차 20종을 추가할 계획이다. 다만 이번 사태로 투자가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번 폭스바겐 사태는 하이브리드·디젤에 이은 3차 자동차 연비 전쟁의 시작을 예고하는 것"이라며 "친환경 고연비 차량의 대안을 찾기 위한 업체들의 고민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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