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건보 가입자 DB 분석해보니] 소득 세배차인데 보험료는 같아… "형평성 안맞다" 민원 봇물

고액연금자라도 자녀가 직장가입자면 한푼도 안내

수입 없는 부동산까지 재산 간주해 무차별 부과

부담 능력·소득 등 고려 부과기준 전면 개편해야


#1. 한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 A씨와 B씨는 회사에서 각각 연간 1,800만원을 받고 있다. 소득에 따라 건강보험료가 부과되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 월 4만4,170원의 똑같은 건보료를 내고 있다. 둘의 월급은 같지만 살림살이는 천지차이다. A씨는 연간 부동산 임대소득으로만 7,100만원을 벌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부과체계에서는 직장가입자가 보수 외에 다른 소득이 있을 경우 7,200만원을 초과할 때만 보험료를 더 걷기 때문에 A씨의 보험료는 오르지 않는다. 이 때문에 B씨는 늘 불만이다. 그는 "실제 벌이가 세 배나 차이 나는데 같은 보험료를 내는 건 분명히 잘못됐다"고 말한다.

#2. 광주에서 살고 있는 70대 박모씨는 매월 16만원의 건강보험료를 내고 있다. 지역가입자인 박씨의 연간 임대소득 501만원과 주택과세표준 1억4,800만원, 자동차(1,500㏄) 등이 고려돼 정해진 건보료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동산과 자동차도 있는 만큼 건보료를 내는 데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실제 소득이 거의 없는 박씨는 건보료 내기가 벅차다. 대출을 받아 마련한 건물은 오래된데다 경기까지 나빠 텅텅 비어 있는 상태. 박씨는 "옆집에 사는 사람은 나와 비슷한 형편인데 자식이 직장을 다니고 있어 보험료를 한 푼도 안 낸다"며 "매달 기초노령연금을 받아 그 돈으로 건보료를 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는 지난 1998년 도입 당시 과세소득 정보 인프라가 부족하고 연금이 일반화되지 않아 지역가입자의 소득 파악이 어려워 재산과 자동차, 성별, 나이, 가족 수 등을 고려해 건보료를 부과해왔다. 임금이 명료한 직장가입자와 건보료 부과 기준이 달리 적용되면서 부과체계의 형평성에 대한 지적과 불평등 문제, 민원제기 등이 잇따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료 관련 민원은 5,800만건에 달한다. 전체 건강보험공단 민원(7,100만건)의 81%가 보험료 민원인 셈이다. 앞서 박씨의 사례처럼 실제 생활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재산에 대해 보험료를 부과하면서 보험료를 체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해 1월 기준 6개월 이상 건보료 체납세대는 157만세대, 체납액은 2조1,566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68.2%(105만가구)가 월보험료 5만원 이하의 생계형 체납세대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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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8월부터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 기획단을 꾸리고 소득 중심으로 부과체계를 개편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13일 서울경제신문이 단독 입수한 '건강보험 가입자 및 보험료 부과체계 특성분석' 용역 보고서는 건강보험 가입자 21만가구를 분석해 현행 보험료 부과체계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건강보험체계 개편의 근거로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보고서는 현행 부과체계의 모순을 하나하나 지적하고 있다.

우선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간의 생활실태와 보험료 부담 수준을 비교분석한 결과 직장가입자는 지역가입자보다 소득이 8배 이상 많고 더 좋은 부동산과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는 등 생활실태가 더 윤택하지만 건보료는 지역가입자가 6% 더 내는 등 생활실태와 보험료 부담 수준 간 차이가 큰 것으로 드러났다. 직장가입자 가구에 속해 보험료를 따로 내지는 않지만 실제 소득을 올리고 있는 피부양자에 대한 보험료 부과 필요성도 보고서는 제기하고 있다. 전체 피부양자 가운데 1,000만원 이상 연금소득이 있는 비율은 20~59세의 경우 0.29%, 60세 이상에서는 5.06%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적어도 60세 이상 피부양자의 5% 이상은 상당 수준의 소득을 올리고 있고 보험료를 부과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번 연구에서는 과세소득 500만원을 기준으로 지역가입자 보험료 부과 기준이 다른 현재 체계의 잘못도 지적하고 있다. 현재 과세소득 500만원 초과 세대는 과세소득과 재산, 그리고 자동차를 등급화해 보험료를 산정하고 과세소득 500만원 이하 세대는 과세소득 대신 성별과 나이, 가족 수를 고려해 보험료를 정한다. 그러나 과세소득 500만원을 초과하는 세대나 그렇지 않은 세대의 생활실태 차이점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500만원 기준 없이 같은 방식으로 보험료를 산정해야 한다고 분석됐다.

직장가입자를 직종별로 분류한 결과에서는 기업의 고위직과 관리직, 사무직과 직장가입자 중 고용주와 자영자의 보험료가 실제 소득에 비해 낮은 것으로 집계돼 명확한 보험료 파악·부과 기준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는 "건강보험료 부과기준을 부담능력에 맞는 보험료 산정으로 같게 하고, 기본보험료 등을 고려한 부과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직장가입자 중 고용주·자영자의 소득과 보험료에 대한 정확한 파악·부과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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