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 은행, 몸집 불리기보다 내실 강화할 때

이재웅 성균관대 명예교수


경쟁력 위해 방대한 네트워크 등 은행 대형화 필요성 강조했지만

국내은행 자산비중 이미 세계적 수준

되레 대마불사 따른 도덕적 해이… 위험투자 부추겨 금융위기 불러


자본비율 높여 자본건전성 확충… 수익 제고 등 통해 내실 다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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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경영에서 규모가 크면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자산 규모가 크면 지점망 등 방대한 네트워크를 유지할 수 있고 대규모 프로젝트를 금융 지원할 수 있어서 경쟁우위를 갖는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말부터 대형은행의 필요성이 논의됐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금융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은행들은 우리·KB·하나·신한 등 4대 금융지주사를 중심으로 합병하는 등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대형화를 추진했다. 은행 대형화의 필요성은 근래에 해외 대형플랜트 건설 수주 실패를 겪으면서 또다시 제기됐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경제 규모에 걸맞은 대형은행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미국 뱅커지가 선정한 2013년 세계 100대 은행의 국가별 국내총생산(GDP) 대비 자산 규모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은행들의 자산비중은 세계 100대 은행 평균과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별 자산 규모 1위인 대형은행의 자산비중을 해당 국가의 경제 규모와 비교해봐도 우리나라 1위 은행의 자산비중은 미국의 1위인 JP모건체이스보다 오히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대형화 타령만 하지만 규모 면에서는 주요 선진국 은행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 은행의 문제는 규모가 아니라 수익성에 있다. 최근 들어 은행의 순이익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저금리·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면서 은행의 예대마진이 줄어든 데다 경기 부진 탓으로 부실대출이 늘었기 때문이다. 은행들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해외진출을 추진하나 해외사업비중은 중국·일본·싱가포르에 비해서도 뒤떨어진다. 특히 은행 국제화를 이끌기 위해 추진되던 동북아 금융허브 육성도 10여년이 지났건만 진전이 없다. 대형화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아니며 대형은행의 도덕적 해이를 고려하면 은행의 대형화가 능사는 아니다. 게다가 미국·영국 등 선진국들은 이미 거대은행의 규모를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의 금융당국은 자본 및 유동성에 관한 많은 새로운 규제를 도입해서 은행의 건전성을 높이려고 노력했다. 미국의 볼커룰(Volcker Rule) 같은 규제는 국민의 세금인 공적자금으로 거대은행이 과도한 위험 경영을 하려는 것을 억제한다. 여기서 거대은행이란 대마불사(大馬不死), 즉 규모나 영향력이 너무 커서 그 은행이 망하도록 방치할 경우 한 나라 경제 또는 세계 경제가 위태로울 수 있는 은행을 말한다. 거대은행은 위기에 처할 경우 정부가 구제(bailout)할 것이라는 안이한 기대감 때문에 다른 은행들보다 높은 신용평가, 낮은 자금조달 비용 등 보조금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혜택은 공정하지 못할 뿐 아니라 다른 은행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빌려서 파생상품·헤지펀드 등 고수익·고위험 투자를 확대하는 그릇된 유인이 된다. 대형은행의 연봉·성과급·스톡옵션 등 경영층에 대한 엄청난 보상도 대형화를 조장한다. 대형화가 대마불사를, 그리고 대마불사에 따른 도덕적 해이가 과도한 위험투자를 부추겨서 부실경영을 초래하고 금융위기의 원인이 된다.

거대은행이 금융시장에서 받는 불공정한 혜택을 줄이고 과도한 위험부담을 억제하기 위해서 거대은행에 대해 다른 은행보다 높은 추가 자본비율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본비율을 높이면 은행이 과도한 위험부담을 삼가하므로 금융위기 가능성이 줄어든다. 미국 금융규제당국은 JP모건체이스·씨티그룹 등 8대 은행에 680억달러의 자본금을 추가로 확충하도록 했다. 거대은행이 추가 자본비율 부담을 낮추려면 자산 규모를 줄여야 한다. 주요 선진국들이 경쟁적으로 거대은행의 자본건전성을 강화하는 것은 거대은행의 공적자금 남용을 막고 금융위기를 방지함으로써 은행을 보다 안전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조치는 글로벌 거대은행에 대해서 추진되고 있지만 금융위기가 발생할 경우 공적자금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 국내은행도 자본금을 추가로 확충할 필요가 있다. 은행은 내실 없는 대형화보다 경쟁력을 강화하고 수익성을 높이는 데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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