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는 라이프(life)라 정의할 수 있어요. 어떻게 투자를 하느냐에 따라 한 개인과 그 가족의 미래가 달라지는 만큼 인생이 걸린 중대한 문제죠."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은 유럽발 위기에 자산가들의 마음을 불안하기 짝이 없다. 자고 일어나면 안팎에서 터지는 소식에 많게는 몇 천만원씩 자산이 늘었다 줄었다 한다. 이들에게 투자를 조언해주는 금융회사 프라이빗뱅커(PB)의 마음이야 오죽할까. 요즘처럼 혼란한 시기야말로 그들에게 '투자의 철학'이 절실할 것이다. 국내 1호 PB이자 지금은 100억원대 이상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투자자문을 맡고 있는 정복기(48ㆍ사진) 한국씨티은행 CPC(Citigold Private Bank Client) 본부장. 5일 서울 중구 한국씨티은행 본점에서 만난 그는 투자를 '인생'이라 정의했다. 그의 투자원칙은 간단하고 명료해 보이지만 그의 평범한 발언 한 줄에는 지난 22년 PB로서의 삶의 철학이 담겨 있다. "직원들에게 항상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라는 말을 강조합니다. 고객들이 자신의 가족이라고 생각한다면 투자할 때 조금이라도 더 신중을 기하지 않겠어요." 그 때문일까. 정 본부장은 고객들을 대할 때 무엇보다 '진정성'으로 승부한다. 3년 전 일화에는 그의 PB로서의 삶의 궤적이 녹아 있다. 당시 그가 17년간 자산운용을 맡고 있는 모 기업 회장의 부인이 새벽에 숨을 거뒀다. 그런데 회장이 그 새벽에 제일 먼저 찾은 사람이 다름 아닌 정 본부장이었다. 그리고 그는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회장 자녀들이 귀국할 때까지 사실상의 상주 노릇을 했다. 회장이 그만큼 믿고 의지했다는 뜻이지만 한편으로 단순히 투자자와 PB의 관계를 넘어선 신뢰가 느껴진다. 이는 정 본부장이 지난 22년 PB시장에서 최고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최근 4~5년 사이 PB산업이 급속도로 팽창하며 정 본부장의 고민이 한 가지 더 깊어지고 있다. 바로 전문 PB들이 부족한 국내 현실이다. "시중 금융회사들은 전문성과 상관없이 경력이 오래됐거나 보유고객 수가 많은 직원들을 PB 자리에 앉히고 있어요. 전문성 결여는 고객 자산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정말 위험한 발상입니다." 생각 끝에 정 본부장은 2006년 숭실대와 함께 경영대학원에 PB학과를 개설했다. 커리큘럼 수립부터 교수 섭외까지 모든 과정을 도맡았다. 정 본부장 역시 이곳에서 5년 가까이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렇게 해서 그가 배출한 업계 제자만 160여명에 이른다. 모두 든든한 정 대표의 후원군이다.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국내 투자심리마저 꽁꽁 얼어붙은 요즘. 부자들의 투자방법이 궁금해졌다. 정 본부장이 분석한 100억원대 이상 자산가들과 일반 개미들의 투자방법 차이는 의외로 단순했다. "부자들은 투자상품을 선택할 때 리스크를 먼저 고려한 다음에 기대수익을 생각하지만 일반 투자자들은 당장 눈앞에 기대수익만을 좇습니다." 리스크에 대한 분석 없이는 '백전백패'라는 설명이다. 이처럼 리스크에 민감한 부자들이 최근 2~3개월 사이 투자하고 있는 상품은 해외 채권이다. 주로 안정적인 미국과 일본계 본드채권이 많지만 최근에는 서유럽 국가들의 본드채권상품에도 자금이 몰리고 있다고 정 본부장은 귀띔했다. "유럽 재정위기의 충격은 아직도 깊죠. 하지만 올 들어서만 유럽 국가들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강등되면서 금융불안사태도 어느 정도 저점을 찍었다는 심리가 배어나는 듯합니다." 정 본부장은 "유럽 재정위기 여파가 길어지면 각국 정부가 재정ㆍ통화정책을 혼합해 적극적으로 경기부양에 나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이미 대부분의 악재가 시장에 노출된 가운데 국내시장의 내성이 강해지고 있어 내년 하반기 금융시장의 반등도 내다보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