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국가 시스템 개조하자] 10부. 자본시장 토대부터 다져라 <2> 기관을 중심에

기관 비중 고작 13%… 연기금 등 장기투자 유도 '안전판' 키워야<br>기관투자가 존재감 없어 대외변수·외국인에 휘둘려<br>지나친 건전성 규제 자제 퇴직연금 증시 진입 늘리고<br>기금운용 평가기간 확대 세혜택 등 유인책 마련을


지난달 13일 코스피지수는 올 들어 처음으로 1,900 밑으로 떨어졌다.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외국인이었다. 미국의 출구전략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외국인은 이날 올 들어 최대인 9,551억원을 내다 팔았다. 기관투자가들이 4,874억원을 사들이며 증시방어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날 하루 동안 유가증권시장의 시가총액은 15조6,000억원 증발했다. 대외변수와 외국인에 취약한 한국 증시의 현주소가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한국 증시가 대외변수와 외국인에 이토록 휘둘리는 것은 기관투자가의 존재감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시가총액 기준으로 지난 2011년 말 기관투자가의 주식보유 비중은 전체의 12.97%에 불과하다. 이는 영국(70%), 미국(40%) 등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외국인은 전체의 30.6%, 개인은 24.4%를 차지하고 있다.


평균 보유기간도 다른 나라에 비해 짧다. 세계거래소연맹(WFE)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식 투자자의 평균 보유기간은 0.58년으로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0.71년, 홍콩(1.68년), 영국(1.22년), 일본(0.93) 등에 비해 낮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기관투자가 중에서도 장기투자가 가능한 연기금과 보험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국민연금ㆍ사학연금ㆍ공무원연금 등 3대 연기금이 주식 투자 비중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국내 자본시장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국민연금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자산이 늘어나는 구조인데다 수익률 제고를 위해 채권을 줄이고 주식을 늘리는 방향으로 자산배분을 하고 있어 앞으로 그 역할이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도 연기금의 주식시장 역할 강화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6월 그동안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제한했던 '10%룰(지분율 10% 이상 기업에 대해서는 단 한주라도 변동이 있을 때마다 5일 이내에 공시하도록 한 규정)'을 오는 9월부터 완화하기로 했다.

기관투자가 역할 강화의 또 다른 축은 보험사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4월 말 기준 국내 생명보험회사는 총 24개며 이들의 운용자산은 449조7,000억원이다. 이 중 주식은 26조원으로 전체 운용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8%에 불과하다. 이는 금융위기 발생 직후인 2009년 4월 말(5.43%)과 비교해 거의 변동이 없는 수준이다. 미국생명보험협회(ACLI)에 따르면 미국 보험사들은 일반계정과 분리계정을 합쳐 전체 자산 중 30% 정도를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보험사가 주식투자를 꺼리는 것은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보험사의 특성상 주식은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최근의 저금리 기조를 고려하면 보험사들의 주식투자 확대는 고려 대상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보험사에 대한 감독당국의 지나친 건전성 강화 규제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기관투자가를 육성하자고 하면서도 최근 보험사들의 위험기준자기자본(RBC) 규제를 강화하는 등 위험자산 투자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며 "정부의 정책방향이 거꾸로 가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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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기관투자가의 역할을 키울 수 있는 묘안으로 퇴직연금을 제시했다. 퇴직연금 규모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데다 특성상 장기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퇴직연금시장 규모는 2007년 3월 9,317억원에서 올 3월 현재 68조원으로 늘어났으며 2020년에는 200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도 퇴직연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관련규정을 개정해 퇴직연금이 주식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확대했다. 기업이 직접 퇴직연금에 가입해 운용까지 책임지는 확정급여형(DB)의 경우 상장주식은 적립금의 30%를 투자할 수 있도록 했으며 주식형펀드와 혼합형펀드에도 50%를 투자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개인이 운용하는 확정기여형(DC)의 경우 이전에는 관련투자 자체를 금지했지만 주식형펀드와 부동산펀드에 40%를 투자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퇴직연금 상품은 원리금보장형이 94%,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실적배당형이 6% 수준으로 조성돼 자본시장에서 사실상 배제돼 있다.

이 같은 문제가 나타나는 것은 보험ㆍ은행ㆍ증권 등 금융기관이 퇴직연금을 고객 자산을 맡아 운용하는 상품이 아닌 손쉽게 예금을 유치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송 연구원은 "실제 전문가들과 상담하고 난 고객들은 퇴직연금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진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며 "금융기관이 고객들에게 퇴직연금을 충분하게 설명한다면 실적배당형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자본시장의 지나치게 짧은 운용성과 평가기간도 장기투자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금융위의 한 관계자는 "퇴직연금으로 장기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퇴직연금 운용 담당자들이 단기적 운용성과에 얽매이지 않도록 평가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기금 관계자도 "기금운용 성과평가를 매년 하면 운용자 입장에서는 1년 성과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며 "연기금 자금운용단장들의 임기가 2+1년인데 3년 정도로 평가기간을 길게 잡아주면 담당자들이 그 기간에 책임지고 운용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관투자가가 장기투자를 할 수 있도록 시장 자체의 매력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영일 한국자산운용 주식운용부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자금 유출입이 잦은 국내 투자자를 오래 붙잡아두려면 시장 자체의 매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 방법으로 배당수익률을 높이는 것과 장기투자자에게 세제혜택을 주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과 같은 저성장ㆍ저금리 기조에서는 배당수익률이 중요한데 우리나라의 경우 1%로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며 "동남아시아도 배당수익률이 3~4%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고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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