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一日一識] <25> 아까운 돈 vs 아깝지 않은 돈

같은 금액도 아까운 돈이 있고 아깝지 않은 돈이 있다. 누구를 위해 썼느냐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경험이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 친구 A와 밥을 먹었다. 1인당 5만원이 나왔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선뜻 지갑을 열었다. 기분 좋은 지출이었다. 그 날 저녁 시간이 맞아 친구 B와 커피 한 잔을 했다. 당연히 내겠거니 하는 B 앞에서 언짢은 표정을 감추기 힘들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데, 5,000원 내면서 이런 기분이 들다니’ 스스로 쫌스럽다는 생각이 들자 가뜩이나 불편한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5만원 대 5,000원. 전통 경제학에서 말한 대로라면 숫자가 증가할수록 그 가치도 증가해야 맞습니다. 그러나 실생활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가격은 10배 차이지만 그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썼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경험’(Experience)이 ‘가치’(Value)를 결정합니다. 행동 경제학자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탈러(Richard Thaler) 박사는 이런 통찰을 종합해서 ‘심리적 구좌 이론’(Mental Accounting Theory)을 만들었습니다. 은행에 저축하기 위한 돈, 사치용품을 사기 위한 돈, 식료품을 사기 위한 돈이 모두 머릿속에서 제각각 계좌처럼 구분돼 관리된다는 이론입니다. 또 탈러 박사는 어떻게 돈을 벌어들였느냐에 따라 소비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습니다. 가령 회사에서 일해서, 또는 장사나 사업을 해서 근로의 대가로 벌어들인 돈은 중요한 일이나 일상생활에 지출합니다. 그러나 국세 환급이나 보너스로 받은 돈 같은 것은 비싼 전자제품, 호텔에서의 스파나 마사지와 같은 쾌락적(Hedonic Value) 가치를 갖는 일에 소모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노동한 경험에 비례해 소비 경험도 조절한다는 재미있는 분석 결과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얼마나 쓸까요? 빅데이터 전문 연구기관인 다음소프트에 따르면 요즘 쾌락적 가치의 가장 대표적인 키워드 중 하나인 ‘힐링’이나 ‘주말’이라는 단어와 가장 연관관계가 높은 내용은 ‘먹방’ ‘맛집’과 같은 단어였습니다. 과거 사람들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감상하러 미술관에 가거나, 음악회, 종교시설 등을 통해 내면을 치유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친한 친구와 맛있는 것을 먹고 마시는 게 심리적 치료라는 겁니다. 더이상 사람들의 취향이 거창해 지지 않는 사회입니다. 재미있게도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싱글’, 20대에서 40대 사이의 혼자 사는 젊은 연령대 직장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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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구좌 이론의 관점에 비추어 볼까요? 이들이 자기 치유를 위해 거창한 해외여행이나 미술품 관람을 즐기기보다 그저 근교나 젊음의 거리에서 맛있는 식사를 즐기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벌어들이는 수익의 원천이 대부분 노동의 대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피 같은 자기 돈을 일상적이지 않은 데 쓴다는 것은 다소 부담스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아깝기까지 합니다. 빅 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이들이 금융자산에 투자하거나 장기적인 투자 수익을 바라볼 수 있는 상품에 관심을 갖는 일은 흔치 않다고 합니다. 그저 오늘을 사는 현세주의, 당장의 소비가 더욱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크게 기대되지 않는 경험에 돈을 쓴다는 것은 심리적 구좌의 원칙을 이반하는 일인 셈입니다.

최근 업종을 막론하고 한국 기업들은 하나같이 후발주자의 등장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의 소비재 분야 진출이 그렇습니다. 개도국 시장에서는 이미 경쟁의 결과가 판가름 났다는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남을 의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이 돈을 쓰면서도 아깝지 않게 여기는 경험이 무엇인가 고민하는 일 같습니다. 또한 소비자들이 어떻게 돈을 쓰는지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 ‘어떻게 버는가’에 대해서도 더 깊은 관심이 필요할 것입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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