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납세자의 날 씁쓸한 월급쟁이

어김없이 '납세자의 날'을 맞이해 3일 서울 COEX에서 성대한 잔치가 열렸다. 295명의 모범납세자 및 기업에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빛나는 포상이 수여됐다. 약방의 감초처럼 유명 연예인도 자리를 빛냈다. 인사청문회에 서는 장관 후보자도 세금 탈루 혐의로 손가락질 받는 시대에 모범납세자들만큼 진정한 애국자는 없다. 그러나 행사장 구석구석을 둘러봐도 찾을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바로 '유리지갑'으로 불리는 월급쟁이들이다. 지난 1월 통계청 자료 기준 임금근로자가 1,683만명에 달하고 이들 대부분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원천징수를 통해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있지만 이들을 대표해 상을 받는 모범납세자는 없었다. 유리지갑이라는 단어 자체가 십원 단위 소득까지 낱낱이 국세청에 자동 신고돼 매달 월급에서 원천징수를 해가기 때문에 생겨났다. 빠져나갈 구멍도 없다. 매년 연말정산을 통한 각종 소득공제가 그나마 월급쟁이들이 비빌 언덕이었지만 해마다 줄어드는 공제에 '13월의 보너스'는 '13월의 자진납세'가 될 판이다. 최근 불거진 신용카드 소득공제 논란은 재정건전성 여부를 떠나 월급쟁이들이 얼마나 상대적 박탈감을 안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예나 지금이나 성실하게 세금을 내고 역차별을 받아 억울한 것은 월급쟁이다. 물론 개발연대 시대에야 소득신고를 성실히 하는 사업자 자체가 포상감이었다. 나라 곳간을 채워주는 고액납세자는 모범으로 내세울 만도 하다. 그러나 민간소비지출 가운데 카드 이용액이 56.1%(지난해 3ㆍ4분기 기준)에 달하고 현금영수증 사용도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제 세금신고는 성실하게 했을 때 칭찬해야 할 일이 아닌 불량하게 했을 때 엄히 다스려야 할 일이다. 어찌보면 모범납세자라는 단어 자체가 과거 시대의 유물일 수 있다.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제안 하나 하겠다. 내년 '제46회 납세자의 날'에는 평범하지만 꼬박꼬박 세금 잘 내는 유리지갑을 대표하는 모범납세자 한명을 선정하면 어떨까. 이왕이면 수십년간 한 직장에서 빛나지는 않지만 묵묵히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우리네 이웃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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