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앞두고 30% 이상 대대적 할인<br>반짝 소비 특수 기대되지만 출혈경쟁에 수익악화 불보듯

미국 대형 유통업체들이 연말 쇼핑시즌을 맞아 출혈경쟁에 돌입하면서 수익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지부진한 경기회복세에다 미 정치권의 예산전쟁 불확실성 등의 여파로 소비자들의 지갑이 열리지 않자 업체마다 사상 유례없는 할인행사에 나서고 있는 탓이다. 이처럼 공멸이 뻔한데도 '울며 겨자먹기'로 30% 이상의 할인경쟁을 벌이면서 미 유통업계가 이른바 '죄수의 딜레마'에 빠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9일(현지시간)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월마트, 가전 소매업체인 베스트바이, 백화점 체인 메이시 등 주요 소매업체들은 한해 최대 쇼핑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블랙프라이데이(추수감사절 다음날로 올해는 11월29일)를 앞두고 공격적인 할인행사 계획을 내놓고 있다. 연말 쇼핑시즌은 연간 매출의 20~30%를 차지해 한해 실적을 좌우한다.


할인전쟁은 세계 최대 소매점인 월마트가 촉발했다. 월마트는 최근 32인치 TV를 단돈 98달러에 내놓고 아이패드 미니는 299달러에 파는 동시에 100달러짜리 상품권도 주겠다는 할인계획을 발표했다. 나아가 월마트는 이날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블랙프라이데이 이전 한주 동안 모든 장난감ㆍ전자제품을 타깃ㆍ토이저러스ㆍ베스트바이 등 경쟁업체보다 싸게 팔겠다"고 선전포고까지 했다. 이를 위해 월마트는 TV와 태블릿PC를 지난해보다 65%, 100%가량 더 구매해놓고 물량공세를 벼르고 있다.

이에 맞서 다른 업체들도 대대적인 할인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메이시의 경우 블랙프라이데이에 도어버스터(개장시간 특가판매)를 실시하기로 했다. 패션업체 갭도 올드네이비 판매점을 처음 방문하는 손님에게 100만달러를 주기로 했고 시어스도 예약수수료를 없애기로 하는 등 총력전에 들어간 상태다. 컨설팅 업체인 그로스파트너스의 크레이그 존슨 대표는 "소비자들은 매장에서 대체로 30% 이상 할인된 가격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들 유통업체는 블랙프라이데이 개장시간을 앞당기거나 오랜 전통을 깨고 사상 처음으로 추수감사절에 영업할 것이라는 계획을 속속 밝히고 있다. K마트는 추수감사절 당일에 영업하기로 했고 토이저러스나 베스트바이트도 통상 자정부터 시작한 블랙프라이데이 영업을 각각 전날 오후5시, 오후6시로 앞당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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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빅세일에 힘입어 연말 반짝소비 특수도 기대되고 있다. 알릭스파트너스의 데이비드 바석 이사는 "광란의 할인행사가 예상된다"며 "연말 소매판매 매출이 지난해보다 4.1~4.9%가량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지난해 증가율 3.5%와 전미소매연합회 전망치인 3.9%를 웃도는 수치다.

문제는 할인경쟁이 치열해지면 매출은 늘어도 업체들의 수익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실제 이날 베스트바이는 올 3ㆍ4분기 흑자전환 실적을 발표했지만 주가는 장중 한 때 10.97% 폭락했다가 6.6% 하락으로 마감했다. 새런 매컬럼 베스트바이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실적발표 자리에서 "연말 시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지만 실적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다른 유통업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메이시의 경우 올 4ㆍ4분기 수익이 40.3%나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JC페니도 어쩔 수 없이 극단적 할인이라는 비상수단을 선택해 수익성 악화 가능성이 크다는 게 모건스탠리의 지적이다. 유례없는 연말 판매대전을 시작한 월마트 역시 전체 수익성은 나빠질 수 있다는 게 제니캐피털마켓의 분석이다.

로널드 굿스테인 조지타운대 마케팅 교수는 "소비자들이 앞으로는 할인상품만 찾으려 할 것"이라며 "업체들이 스스로 유통산업을 죽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블룸버그는 "만약 제 가격에 제품을 판다면 모든 대형업체들이 좋겠지만 누군가가 할인행사를 시작하면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유통업체가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론의 가장 유명한 사례로 격리 수용된 두 죄수가 모두 자백하지 않을 경우 둘 다 가벼운 형을 받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서로를 배신하며 자백해 둘 다 중형을 받게 되는 현상. 서로 협력할 경우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지만 개인적 욕심으로 모두에게 불리한 상황을 초래하는 불합리한 선택을 하는 경우에 쓰인다.

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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