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송보송 앳된 얼굴이지만, 뱉어내는 말은 걸쭉하고 구성지다. 팔자걸음에 독특한 웃음소리, '몸빼' 바지가 잘 어울리는 영락없는 70대 할머니지만 이 모습을 감칠맛 나게 표현하는 건 풋풋한 스무 살의 배우 심은경(사진)이다.
1월22일 개봉한 후 지난 주말(1월31일~2월1일) 박스오피스 1위로 올라선 코미디 영화 '수상한 그녀'는 어느 날 마법처럼 꽃다운 청춘으로 돌아간 일흔 살 오말순 할머니의 꿈 같은 시간 여행을 그린 작품이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홀로 억척스럽게 외동아들을 키워낸 오말순 할머니가 과거 젊은 시절로 돌아가 젊은 총각과 풋사랑에 빠지고 가수의 꿈도 이룬다.
심은경은 이 영화에서 억척스러운 욕쟁이 할머니 오말순(나문희)의 스무 살 버전인 오두리로 열연한다. 영화는 심은경의 원맨쇼에 가까울 정도로 무게 중심이 그에게 오롯이 쏠린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심은경은 "잘못하면 영화 전체를 망칠 수도 있다는 부담감이 상당했다"고 고백했다. 무엇보다 "유학 후 다시금 마음을 잡고 새롭게 시작한 첫 작품, '써니'라는 도움닫기를 거쳐 제대로 성인 연기에 도전하는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고 애착이 갔던 작품"이라고 했다.
이제 갓 청춘의 초입에 들어선 심은경이지만, 그는 연기 경력만 올해로 10년 차 배우다.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려 열한 살 때 연기학원에 다녔고, 얼떨결에 드라마(2004년 '단팥빵')에 출연한 것이 계기가 돼 10년째 영화·드라마에서 크고 작은 배역을 소화하며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다.
심은경이 대중에게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킨 작품은 영화 '써니'(2011)다. 당시 '욕에 빙의된' 전학생 나미 역을 맡아 열연해 700만 관객을 동원하는 데 큰 힘을 보태기도 했다. '써니'의 성공 후 세간의 관심을 누리며 차기작을 선택하는 게 으레 밟아야 할 수순일 법도 했지만, 그는 돌연 모든 호사를 뒤로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동부 피츠버그의 사립학교에서 6개월을 보낸 뒤 다시 첼리스트 요요마가 다녔던 뉴욕 프로페셔널 칠드런 스쿨로 옮겨 고교 과정을 그곳에서 마쳤다. 의사소통의 어려움, 친밀한 교우 관계를 맺지 못해 생기는 고독감 등으로 뒤늦은 사춘기를 겪기도 했다.
"쉽게 아물지 않는 극복하기 어려운 상처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면 그때 그 상처가 외려 배우로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돼 힘을 주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심은경은 첫 소속사로 BH엔터테인먼트에 둥지를 틀었다. 이전까지 어머니가 매니저 역할을 담당하며 모든 일정을 조율했다. 전문적인 코칭 덕분에 자신의 단점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외적인 부분에서 많이 꼬집어 주셨어요. 예전에는 (연기 외에) 이런 것들이 별로 중요치 않다 생각했고, 융통성도 없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성인 연기자로서 걸어나갈 때 이것 또한 고민하고 발전시켜야 할 부분이니 조언대로 잘 소화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심은경은 영화 '수상한 그녀'를 촬영하면서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낀 건 "진짜 심은경이 될 수 있는 건 오롯이 연기밖에 없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배우에게 입은 그냥 대사를 전하는 매개체일 뿐 감정을 전하는 눈이 더 중요하다고 늘 어머니께서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어요. 다양한 연기를 깊이 있게 소화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이제 정말 배우 심은경으로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