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미술시장이 자꾸만 위축되는 가장 큰 이유는 미술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다. 표미선 화랑협회 회장은 "양도세 20% 내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미술품이 비자금 같은 부정한 돈과 직결된다는 식의 부정적 인식이 가장 큰 문제"라며 "구입 자금의 문제를 마치 미술품이 나쁜 것인 양 호도돼 선량한 애호가와 컬렉터를 움츠리게 만든다"고 호소했다. 기업들도 이제 과거처럼 미술품을 구린 비자금의 은닉처로 이용하는 잘못된 관행을 근절해야 한다. 특히 재계 지도층, 특히 비자금에 연루된 대기업 오너 등 재계 인사들이 미술품을 투자 못지않게 감상 대상물로서 거래하고, 더 나아가 소장 미술품을 국립미술관에 기증하는 방식 등으로 미술시장 이미지와 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미술품 사면 비자금 은닉?=미국의 팝아티스트 로이 릭텐스타인은 세계 경매거래량 톱10에 드는 거장이다. 그런데 유독 국내에서만 '비자금' 연루 작가로 통한다. 그의 작품 '행복한 눈물'이 2007년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삼성 X파일'사건에서 지목된 탓이다. 이 사건에 뉴욕발 금융위기까지 겹쳐 국내 미술시장은 거래액이 급감했다. 당시 그림 중개에 관련된 인물이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였다. 이후 홍 대표는 대기업 오너의 비자금 은닉 사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2011년 그는 오리온그룹의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미술품 거래를 가장한 돈세탁 혐의로 기소됐다. 같은 해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인사 청탁용 뇌물로 고(故) 최욱경 화백의 '학동마을'을 건넨 사건에서는, 그림 구입처가 서미갤러리였다. 무혐의로 결론나기는 했으나 2012년 솔로몬저축은행과 미래저축은행의 불법 교차대출에 관여한 혐의로도 홍 대표가 조사를 받았다. 지난해 CJ그룹 비자금 수사 때도 이재현 회장이 해외에서 앤디 워홀, 사이 톰블리 등 1,000억원대 미술품을 사들이는 데 홍 대표가 관여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 굵직한 비자금 사건마다 미술품이 빠지지 않았고, 그 때마다 미술시장 전체가 흔들렸다. 한편 지난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환수를 위해 아들 전재국 씨의 미술품이 압류돼 경매에 올랐는데, 거의 '완판'을 기록해 시장이 오랜만에 활기를 띠었다. 비자금으로 언 미술시장이 비자금으로 풀린 역설적 상황이었다.
◇화랑은 '봉이 김선달'?=서미갤러리의 이름과 함께 수십억 원대 그림이 거론되다 보니 일반인들은 미술을 초호화 사치품으로, 화랑업계를 투자없이 큰 돈 버는 '봉이 김선달'로 보기도 한다.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최근 발간한 '2012년 미술시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총 397개 화랑 가운데 31%에 해당하는 124개 화랑이 그림을 한 점도 못 팔아 연간 매출 0원을 기록했다. 83%의 화랑이 연매출 1억원 미만이며, 이우환의 그림 1점 값도 안 되는 5억원 이상 매출 화랑은 21개(5%)에 불과했다. 반면 일반 화랑과 달리 공개 전시도 않은 채 '은밀하게'하게 운영된 서미갤러리는 2007년 이후 평균 1,000억원대의 비정상적 매출을 보였다. 특정 화랑 한두 곳 때문에 미술시장 전체를 매도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화랑이 상업시설임에도 문화기구로 존중받는 이유는 작가를 발굴해 그 작품을 중개하는 게 본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작가를 지원하고 자체 기획전을 여는 '진짜 화랑'과 그림 매매로 돈만 챙기는 이른바 '나까마' 화랑이 구분된다. 지속적으로 거래하는 전속작가를 둔 화랑은 전체의 30%(122개) 뿐인데 '미술시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속작가 수는 611명(중복 포함)으로 집계됐다. 이들 뜻있는 화랑은 해외 아트페어에 참가해 미술관이 하지 못하는 작가 프로모션도 도맡는다. 스위스 아트바젤, 영국 프리즈, 미국 아모리쇼 등 굵직한 아트페어에는 세계 미술계 거물들이 집결하기 때문이다. 이들 최정상급 아트페어의 참가비(부스비)는 7만~10만 유로 수준이고, 운반과 보험 등 제반 비용이 만만치 않다. 정부에서 국제 아트페어 참가 화랑에 대한 지원예산을 운영하지만 미미한 수준이라, 전문가들은 세제 혜택 등 다른 방식의 정책적 지원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은 "경기가 나쁘건 좋건 매년 빠지지 않고 우리 작가 작품을 갖고 아트페어에 나간지 10년, 20년 되니까 이제야 외국 컬렉터들이 한국작가를 알아보고 찾기 시작한다"며 "국위선양의 자부심이 있는데 정작 국내에서는 갤러리가 사치품 거래처로, 컬렉터를 부정한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매년 10회 이상 국제 아트페어에 참가해 연 평균 30억원을 참가경비로 지출하는 그는 미국 미술전문지 '아트앤옥션'이 선정한 '파워미술인 100'에 아시아 딜러로 유일하게 이름이 올랐다.
이같은 미술품 거래에 대한 오해가 풀려야 하는 동시에, 미술시장에 대한 이해가 절실하다. 미술평론가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같은 동네의 부동산 가격이 동일하지 않은 것처럼, 미술품은 대량생산이 가능한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에 같은 작가의 비슷한 그림도 완성도와 수요자 취향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며 "전시작품을 구입하는 1차 시장은 수요자의 기호와 필요에 의해서, 경매와 위탁판매 등의 2차시장은 찾던 물건이 원하는 가격에 나왔을 때 거래가 성사된다는 미술시장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