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화 약세의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최근 대만 금융당국은 위안화 가치 상승에 베팅해 수십억달러의 손실을 본 은행을 처벌하기로 결정했다. '절상'이라는 한쪽 방향으로 내달리던 위안화가 '절하'로 돌아서며 우려했던 파생상품 폭탄이 대만에서 터진 것이다.
글로벌 통화 중 가장 변동성이 낮다고 인식되던 위안화가 시장 위험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올 들어 지난 18일까지 달러화 대비 위안화의 명목절하율은 2.8%.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실질절하율은 3.2%에 달한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시선은 곱지 않다. 중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의도적으로 위안화 약세를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이컵 루 미 재무장관은 중국의 환율변동폭 확대에 대해 "시장환율로 가려면 아직 멀었다"고 지적했다. 미 재무부의 걱정은 위안화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정책기조 변화다. 자칫 현재 나타나고 있는 위안화 약세가 중국의 환율정책 변화를 의미한다면 이는 신흥국들의 연쇄 통화약세를 초래할 수 있고 미국의 무역적자 확대로 연결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최근의 위안화 약세가 경제성장 둔화 우려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장밍 사회과학원 국제금융연구실 부주임은 "국가 경제를 불안정하게 할 만큼 위안화의 가파른 하락세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인민은행이 시장에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환율전쟁 원치 않지만=중국 금융당국이 위안화 약세를 의도적으로 유도하고 있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중국도 환율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 금융당국의 시각에서 위안화 약세는 정상화의 과정이다. 절상이라는 한 방향으로만 치닫던 위안화를 환율변동폭 확대를 통해 양방향의 변동성을 부여, 최종 목표인 위안화의 시장화에 한발 더 다가가겠다는 것이다. 또 그동안 비정상적인 위안화 고평가로 기업의 이익은 줄어드는 대신 부채가 늘어났다는 점도 위안화 약세를 용인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최근 2~3년간 중국 기업의 이익성장은 제로에 가깝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15%나 늘었다. 위안화 강세는 금융 시스템에도 균열을 일으켰다. 중국 기업들은 자본통제를 피하기 위해 원자재 판매로 유동성을 창출해왔다. 홍콩 등에서 영업하는 해외 은행에서 신용장(LC)을 통해 해외차입을 일으켜 구리ㆍ니켈 등 광물자원을 사들인 뒤 이를 중국 내에서 되팔고 여기서 생긴 자금은 부채상환 대신 위안화 강세와 금리차이에 따른 추가 수익을 얻기 위해 중국 은행권이나 그림자금융에 예치해왔다. 그리고 이 자금은 자산관리상품(WMP)을 통해 다시 기업으로 대출된다. 위안화 강세를 이용해 돈이 돌고 돌아 리스크가 커지고 한계기업에도 돈이 유입되며 금융 시스템 불안을 가중시켜온 셈이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위안화 강세에 대한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위안화 약세를 용인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결국 외부에서 환율전쟁을 경고한다 해도 중국 정부는 더 큰 위험을 막기 위해 위안화 약세를 끌고 갈 수 밖에 없다.
◇숨은 복병 달러채권ㆍ파생상품=문제는 위안화 가치 하락이 달러화 부채가 높은 중국 기업들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위안화 약세에서 가장 취약한 곳은 부동산 개발업체. 크레디트스위스(CS)는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가 발행한 채권의 90%가 달러채권으로 위안화가 5~15% 절하될 경우 부동산 개발업체의 수익은 74%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 사회과학원은 지금 추세대로 부동산 개발업체의 달러채권이 늘어난다면 몇년 후 만기가 집중되며 최악의 자금난을 겪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외화부채를 쌓아놓고 있는 항공사도 위안화 약세로 곤혹스럽다. 전체 부채의 80%가 외화부채인 중국남방항공의 경우 1ㆍ4분기 3억5,000만위안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위안화 약세로 인한 환율변수를 제외하면 남방항공은 1ㆍ4분기 15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중국판 키코사태도 시간문제다. 기업들이 위안화 절상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가입한 파생상품도 위안화 가치가 낮아지면서 대규모 손실을 내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3월 말 기준 중국 기업들이 위안화 절상 위험을 회피하려는 목적으로 가입한 파생상품, 개인 투자상품 피해액이 23억달러 규모라고 분석했다.
◇위안화 국제화 단계적 추진=중국 금융당국이 바라는 가장 적합한 위안화 국제화 시나리오는 금융개혁의 틀 속에서의 단계적 진행이다. 엔화나 파운드화를 앞질러 달러 기축통화의 대안후보 정도로 여겨지고 무역거래에서 위안화의 지위가 올라가기를 바랄 뿐 당장 달러 기축통화를 흔들 생각은 없다.
중국은 위안화 국제화를 위한 제반 여건을 하나씩 갖춰가고 있다. 2009년 위안화 국제화를 선언한 후 2010년 홍콩에 위안화와 미국 달러화 간 역외외환시장을 개설했고 중국 본토 주식ㆍ채권시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한도도 확대했다. 또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과의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했다. 무역화폐의 지위도 한 단계 올라섰다. 현재 세계 화폐 순위(결제량 기준)에서 스위스프랑과 함께 7위를 놓고 경합을 벌이고 있다. 중국 인민대는 위안화가 향후 2~3년 안에 일본 엔화, 영국 파운드화를 제치고 지급결제 및 가치저장 통화로 활용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위안화 국제화지수는 1.88이다. 엔화(4.50), 파운드화(4.19)에는 뒤지지만 빠르게 증가하는 결제화폐 수요로 볼 때 2~3년 안에 뒤집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급격한 위안화 국제화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밖에 없다. 투기자금의 급격한 유출입과 환율 변동성 확대는 자칫 중국 경제에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다 유동성 조절 문제 등은 중국 내 금융 시스템을 흔들 수 있다. 정부의 개혁 시간표에 따라 위안화 국제화의 속도도 조절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통화기금(IMF) 중국 지부장을 지낸 에스와르 프라사드 코넬대 교수는 "중국도 달러 외에 외환을 보유할 마땅한 방법이 없을 것"이라며 "중국 경제규모가 미국을 앞지르게 되더라도 공공영역 개혁 없이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