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호종합연구소가 분석한 한일 기업의 아시아 사업전략 관련 설문조사 보고서는 일본이 한국보다는 ‘한수 위’임을 보여준다. 일본 기업들의 해외진출이 한국보다 훨씬 오래돼 당연한 결과일수도 있지만 설문을 통해 나타난 우리 기업들의 현주소는 해외시장에 대한 인식이나 글로벌 네트워크, 리스크 의식 등 다양한 면에서 일본과의 격차를 나타냈다. 보고서는 급속도로 발전하는 아시아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이전과 같은 편향된 전략을 고수할 경우 머지않아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고 있다. ◇‘분산된 일본’ 대 ‘집중된 한국’=일본 기업과 비교해 한국 기업의 두드러진 특징은 사업 분야나 거점 지역이 한 곳으로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 지역에서의 비즈니스 내역을 묻는 질문(복수응답)에 일본 기업들은 수출과 수입, 현지의 비즈니스 거점 확보라는 응답이 각각 30~40%로 고르게 나타나고 기술거래를 한다는 응답도 10%에 육박했다. 반면 한국기업은 수출과 수입 업무만 각각 50% 안팎으로 일본 기업보다 높아 아시아 비즈니스가 무역거래에 치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의 경우 수출ㆍ수입 업무를 한다는 응답이 국내는 71.9%와 62.9%로 일본(각각 62.2%)보다 높은 반면 해외거점 설립은 44.9%로 일본(63%)보다 낮았고 기술거래를 하는 기업 비중은 6.7%로 일본(18.1%)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특히 해외 거점 설립 기업의 경우 국내 기업의 중국 ‘쏠림’이 확연하고 앞으로 국제 사업에서 주력할 지역에 대해서도 중국에 대한 지지도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한국 기업의 향후 글로벌 사업 주력지역은 중국이 47.9%로 2위인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20.8%)보다 두 배나 높았고 이어 미국(17.1%), 일본(15.5), 유럽(13.0%), 인도(12.2%) 등 순이었다. 반면 일본은 중국이 37.7%였고 ASEAN(23.9%), 미국(12.4%), NIEs(11.2%) 등이 뒤를 이었다. 특정 지역을 정하지 않았다는 응답도 28.6%에 달했다. ◇한국 해외사업 확장 속도는 우위=국내 기업들의 이 같은 쏠림 현상은 해외진출 역사가 짧아 빚어지는 불가피한 현상이기도 하다. NIEs나 ASEAN에 거점을 설립한 일본 기업의 경우 진출한 지 5년 이상 된 기업이 각각 84%와 75.5%로 압도적으로 높은 반면 한국 기업은 진출한 지 3년 미만이라는 응답 비중이 NIEs는 55.5%, ASEAN은 55.9%에 달했다. 중국에서도 5년 이상 거점을 운영한다는 기업이 일본은 59.1%에 달하는 반면 한국은 30.2%에 그쳤다. 하병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해외 직접투자의 역사가 짧은 한국 기업은 일본이 선점한 동남아 지역을 피해 중국으로 집중하게 된 것이고 일본 기업은 활발하게 해외로 나간 80년대에 중국시장이 지금처럼 개방되지 않아 동남아로 많이 나가게 된 것”이라며 “투자역사가 오래된 일본이 한발 앞선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해외사업의 확장 속도는 한국 기업이 앞선다. 현재 한국 기업 가운데 해외 매출이 없는 기업은 전체의 26.8%이지만 2~3년 뒤에 0%일 것으로 내다보는 기업은 14.6%에 그쳤다. 21~40%의 매출을 해외에서 올리는 기업은 현재 7.8%에서 2~3년 뒤의 전망에서는 16.6%로 급증했다. 반면 일본 기업은 매출 0%라는 응답이 현재 37.2%에서 전망은 33.1%로, 21~40%라는 응답은 6.9%에서 10.3%로 한국에 비해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앞으로 ‘해외사업을 늘릴 예정이 없다’는 기업도 일본은 중소기업 가운데 29.8%, 전체로도 28.6%로 높게 나타난 반면 한국은 11.9%에 그쳐 사업확장에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네트워크 형성에 주력해야=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 기업은 글로벌 조달시스템이 확립된 반면 국내 기업은 글로벌 네트워크가 약해 현지의 저비용 구조 의존도가 높다”며 “때문에 현지의 저비용 메리트가 사라지면 사업 철수 압력에 시달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이번 설문을 통해 미즈호종합연구소가 제기한 지적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미즈호종합연구소는 “중국의 투자환경은 최근 비용상승과 외국자본에 대한 우대조치 철폐 등과 함께 ‘고비용 구조’로 급변하고 있다”며 중국의 저비용 구조에 의존하는 한국기업의 앞날에 대한 의구심을 나타냈다. 이 연구위원은 “개도국이 발전하면 물가는 당연히 오르기 때문에 일본 기업처럼 탄탄한 지역 거점을 확보하고 그 주변에 넓은 하부구조를 갖추는 조달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생산 효율성이나 수요처 확보 측면에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설문조사에서도 일본 기업은 한 지역에서 4개 이상의 현지법인을 설립한 기업의 비중이 중국ㆍNIEsㆍASEANㆍ인도ㆍ미국ㆍ유럽 등 대부분 한국보다 높게 나타났고, 특히 아시아에서 중국과 ASEAN 지역에서는 현지법인을 11개 이상 둔 기업도 지역 네트워크의 다양성이나 깊이 면에서 한국을 앞선 것으로 분석됐다. 이 연구위원은 “기왕 중국으로 적극적인 진출을 하고 있는 국내기업은 아시아 각국으로 진출한 화교자본의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아시아 지역에서의 입지를 넓히는 일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