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의서 최종합의 계획 무산
메르켈·치프라스 설전 벌이며 불쾌한 감정 여과없이 표출
IMF "통상적 유예기간 없다" 30일까지 합의 못할땐 디폴트
그리스 사태가 당사자 간 지루한 '핑퐁 게임'을 반복하며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으로 내달리고 있다. 이번주 말 협상이 그리스의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 및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Grexit) 여부를 가를 마지막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그 결과를 섣불리 예측하기가 어려운 형국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재무장관 협의체인 유로그룹은 25일(이하 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회의를 열어 구제금융을 둘러싼 그리스 정부와 대외 채권단 간 교착상태를 풀 방안에 대해 논의했지만 또다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27일 오전 다시 회의를 갖기로 했다.
이로 인해 이날부터 이틀간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최종 합의에 이르고자 했던 당초 복안도 무위로 돌아갔다. 오히려 각국 정상들은 이날 회의에서 서로에 대해 거친 말들을 내뱉으며 거북스런 감정을 여과 없이 표출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영국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이날 정상회의 만찬 자리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채무유예를 요구하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를 향해 "입을 다물라(shut up)"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긴축 폐기를 앞세워 당선된) 1월의 선거 결과를 존중해달라"는 치프라스 총리의 발언에 "게임은 끝났다"고 응수했다. 이에 치프라스 총리는 "이건 게임이 아니다"라며 "한 국가가 굴욕감을 느낄 때 어떤 반응을 보일 수 있는지 그 수준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최근 그리스 사태 협상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자주 시도되고 있으나 합의점 마련에는 번번이 실패하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일주일 새 유로그룹 회의만 다섯 차례 열렸고 치프라스 총리와 이른바 '트로이카' 채권단(국제통화기금(IMF)·유럽중앙은행(ECB)·EU) 대표 간 접촉도 수시로 이뤄졌다. 지난 22일 긴급회의를 포함해 EU 정상 간 만남도 두 차례나 이뤄졌다.
특히 갈등의 직접적 당사자(그리스·채권단)뿐 아니라 유로존 국가 내에서도 이견이 불거져 나오는 등 최근 그리스 사태는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가는 형국'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은 이날 유로그룹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몇몇 동료는 우리 문서(협상안)뿐 아니라 채권단의 문서에도 동의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세제와 연금 개혁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로 떠오른 가운데 IMF가 연금 삭감 요구에 가장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고 유로존 국가 중 일부는 이런 IMF 측의 요구에 불만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스 디폴트를 막기 위한 최종 데드라인은 EU·ECB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끝나는 날이자 16억유로 상당의 IMF 몫 채무를 상환해야 하는 오는 30일이다. 최종 협상안에 대해 유로존 국가들의 의회 승인 절차까지 남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주 말이 현 교착상태를 풀 마지막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시간이 아주 촉박하다"며 "27일 유로그룹 회의가 그리스에 결정적으로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IMF 측은 30일 채무를 상환하지 않으면 통상적으로 한달간 주어지는 유예기간 없이 곧바로 그리스의 체납을 공식화할 것이라고 이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