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정부 제안을 수용했기 때문인데 13년1개월 만에 판문점에서 남북 당국 간 회담이 개최된 것이다. 판문점에서 남북 당국 간 회담이 마지막으로 열린 것은 지난 2000년 4∼5월 네 차례 있었던 정상회담 준비접촉과 경호ㆍ통신 등 분야별 실무접촉이었다. 그 이후 군사 당국 간 회담이 열리기는 했지만 일반적인 남북 당국 간 회담이 개최되지는 못했다.
이는 북한 군부가 자신들이 관할하는 군사지역이자 남북한 대결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판문점에서 당국 간 회담이 열리는 것에 대해 강력한 반대입장을 견지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오로지 군부가 직접 나서는 회담인 군사 당국 간 회담만 판문점에서 개최하도록 해 일종의 특혜를 누려왔다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또한 생전에 판문점은 미군이 관리하는 지역으로 이곳에서 남북 간 화해와 협력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뜻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준비를 논의하는 회담 이후 열린 남북 당국 간 회담은 모두 서울과 평양을 오가거나 개성ㆍ금강산ㆍ문산 등 판문점 이외의 지역에서만 열렸다. 실제로 2000년 10월 김용순 당시 당 통일전선부장이 서울에 특사로 방문했을 때도 남측에서 적십자회담을 판문점에서 여는 방안을 강력히 요구했지만 결국 금강산에서 개최할 수밖에 없었다. 판문점이 가지는 지리적 근접성에도 불구하고 남북 양측은 왕래에만 오랜 시간을 쏟으면서 다른 지역에서 회담을 한 것이다.
한 전직 고위관리는 “북한은 판문점이 남북한의 화해 문제를 논의하는 남북 당국 간 회담 장소로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며 “이번에 북한이 판문점을 회담 장소로 수용한 것은 파격적인 조치”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북한이 이번 회담 장소로 판문점을 수용했다는 사실 자체가 장관급회담에 굉장한 적극성을 보이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동시에 통일전선부 등 대남기구가 군부의 강경한 입김을 차단하고 현재의 북한 내 정세를 이끌고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한동안 북한 군부가 정세를 주도했지만 이제는 대화를 추구하는 쪽에서 상황을 반전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앞으로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