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도그마에 빠진 환경정책] <하> 제대로 된 민관협의체 만들자

일방통보는 그만… 기업에 귀열고 '친환경 성장' 함께 고민을

정부 온실가스배출전망치 산정기준 공개 안하고

감축목표 30%만 고수하는 '불통' 자세는 문제

민관, 무조건 규제 아닌 경쟁력강화 머리 맞대야

정은보(오른쪽 두 번째) 기획재정부 차관보가 지난 9월1일 정부세종청사 기재부 합동브리핑룸에서 배출권거래제 추진방안을 환경부 등 관계부처와 함께 발표하고 있다. 이날 정부는 산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온실가스배출전망치(BAU) 재검토 작업에 나서기로 했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정부가 의견수렴을 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연합뉴스



"저탄소 녹색성장에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지나친 규제로 기업이 경쟁력을 잃으면 환경정책에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대기업 관계자)

"민관 합동회의를 수차례 하면 뭐합니까. 정부는 이미 답을 정해놓은 채 산업계의 말을 듣지도 않는데요" (전경련 관계자)


22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 17일 오후 환경부 산하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산업계 관계자 4명과 시민단체 소속 4명 등 8명을 모아 비공개회의를 열었다. 온실가스배출전망치(BAU)를 재검토해 내년 상반기까지 새로운 안을 내기 위해서다. 내년부터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ETS)가 시행되면 업체들은 매년 배출할당량을 받은 뒤 부족·잔여분을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다. 할당량은 BAU를 토대로 정해지는데 산업계가 물량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쳐 재검토 작업이 이뤄지는 것이다. 업계에 더 유리한 결과를 도출하고자 열리는 회의인 만큼 기업들의 기대가 컸지만 회의 뒤 재계 단체들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이번 회의가 사실상 정부에서 결론을 내린 뒤 열린 요식행위에 그친데다 회의를 주관하는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가 의사결정기구가 아닌 실무기구여서 권한이 적었기 때문이다. 이날 재계는 센터 측에 BAU 산정의 구체적인 기준을 알려줄 것과 정부부처 등 보다 결정권한이 있는 주체의 참여를 요구했다. 그러나 예상대로 돌아온 답변은 "검토해보겠다"였다. 센터에 결정권이 없는 한계 탓이다. 산업계의 목소리를 더 들어보겠다며 꾸린 회의체지만 여전히 정부는 제대로 의견을 청취할 자세가 안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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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불통', 업계는 '두통'=배출권거래제 논의가 처음 시작된 것은 2009년 이명박 정부 때다. 2015년 제도시행까지 5년의 준비기간 동안 산업계는 배출권이 곧 돈이고 기업의 생존에 직결되는 만큼 높은 관심을 가지고 제도에 자신들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는 데 집중했다. 정부는 대외적으로 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겠다고 공언했고 민관협의체도 수십 차례 열렸다. 하지만 지난 시간에 산업계가 느낀 것은 실망뿐이었다. 정부의 BAU 산정기준은 지금까지도 장막에 가려져 이에 대한 외부의 검증과 비판이 어려운 상황이다. 또 협의과정은 치열한 논쟁과 설득을 통한 합의안 도출보다 정부의 통보에 가까웠다. 기업들이 민관합의기구의 진정성을 의심하면서 정부가 제도를 시행할 명분을 만들기 위한 들러리 역할만 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하는 이유다. 최광민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 팀장은 "정부는 유독 배출권거래제에 대해 정부 안을 밀고 나가는 일방통행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BAU 산정과정을 숨기는 데 대한 불만도 크다. 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의 장현숙 박사는 "비공개회의가 대부분이고 자료도 배포되지 않아 소수의 참석자가 모니터만 보면서 할당량을 검토하고 있다"며 "과학적인 검증 자체가 불가능하고 일부 회의 참여자가 산업계 전체를 대표한다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의 BAU 계산 모델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일고 있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설명회와 간담회를 개최해 상세히 설명했다"고 밝혔지만 산업계는 여전히 "상세한 계산과정과 기초 데이터를 공개하라"고 맞서는 등 온도차가 크다.

◇민관 협의정신 살려 새 판 짜야=민관협의체에 대한 산업계의 요구는 △실질적인 협의체 운영 △원점 재검토 등으로 요약된다. 우리 정부는 2009년 11월 기후변화협약 제15차 총회에서 2020년까지 배출 전망치의 30%를 줄이겠다는 자발적인 감축목표를 제시한 뒤 2012년 5월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시행령에 이를 못 박았다. 업계는 정부가 민관협의체를 제대로 운영하지 않고 각계의 의견수렴을 꺼리는 근본적인 원인을 여기에서 찾고 있다. 김태윤 전경련 미래산업팀장은 "정부가 제시한 할당량의 문제점을 지적해도 좀처럼 수용되지 않는다"며 "30% 감축목표를 지키려고 세워둔 계획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것을 싫어하는 눈치"라고 전했다. 결국 정부가 '30%' 감축 도그마(독단)를 깨지 않는 이상 건설적인 협의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원점(30%)부터 고칠 수 있다는 열린 자세를 보여야 실질적인 민관협의체가 운영될 수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를 낸다. 최 팀장은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도 업계에 민감한 이슈인데 정부는 기업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려 애쓰고 있다"며 "배출권거래 제한에 대해 논의할 때도 같은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규제' 아닌 '성장'에 초점=산업계가 저탄소 녹색성장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규제 일변도로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기보다는 적극적인 녹색산업 육성으로 환경과 경제 모두 살리자는 게 재계의 바람이다. 실제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더해지면서 △미국·중국·일본 등 주요국 환경규제 강화 △친환경 제품의 관세 경감 △세계 환경시장 급성장 같은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내년 말까지 환경상품 관세율을 5% 이하로 떨어뜨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미국 환경전문기관 EBI는 세계 환경시장이 2004년 6,580억달러에서 2014년 9,530억달러, 2020년 1조870억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환경정책을 제대로 활용해 국내 기업들의 친환경 대응력을 높인다면 '에코 리스크'가 되레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환경정책을 결정하는 민관협의체가 '어떻게 규제할지'보다 '어떻게 성장·발전시킬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장 박사는 "우리나라가 환경규제 문제로 아웅다웅할 때 글로벌 환경시장은 이미 다른 나라 손으로 넘어가고 있다"며 "민관이 함께 친환경 경영과 기술개발에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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