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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당국이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논란이 집중됐던 생명과학·영어 과목에 대해 모두 복수정답을 인정한 것은 수능 오류 파문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사태를 조기에 진화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생명과학Ⅱ 과목에서는 전체 응시자 3만3,200여명 가운데 추가 정답자가 2만여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돼 수시·정시를 막론하고 대입 사정 전반에서의 파장이 불가피해졌다. 특히 이번 수능에서 쉬운 출제로 수학B의 변별력이 크게 떨어지고 탐구 영역이 이과생들의 당락을 좌우하게 된 가운데 수정 답안까지 도출되자 수험생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다.
영어와 달리 생명과학 정답 수정이 문제되는 것은 높은 오답률과 관계가 있다. 영어 영역의 경우 기존 오답자가 많지 않아 정답 수정에 따른 파장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생명과학Ⅱ의 경우 기존 정답자는 10% 미만에 불과한 반면 추가 정답자는 응시생의 60~70%에 달한다. 정답자가 추가될 경우 이들의 원점수와 표준점수·백분위 등은 오른다. 하지만 원래 정답인 보기 4번과 오답인 보기 1·3·5번을 선택한 수험생들은 정답 숫자에 변동이 없는 만큼 표준점수와 백분위 등이 가채점 당시보다 내려가게 된다. 등급 컷 근처에 있었던 수험생들의 경우 등급도 내려간다.
문제는 이과생들의 전략과목으로 부상한 탐구 영역의 한 과목에서 추가 정답자가 폭증해 다수 수험생들의 표준점수·백분위 등에 변화가 불가피해졌다는 점이다. 정시 최종 합격자가 소수점에서 당락이 좌우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의대 응시생 등을 비롯해 최상위권 수험생들이 느끼는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다. 주요 대학들은 탐구 영역의 반영비율을 수학과 동일한 30%로 높게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생명과학Ⅱ는 의대 수험생들이 주로 응시하는 이과에서도 가장 어려운 선택과목 중 하나로 판단돼왔다.
김희동 진학사 입시연구소장은 "수학B와 영어가 쉽게 출제돼 변별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생명과학Ⅱ마저 원점수가 올라가는 학생들이 많아지면서 자연계 최상위권 학과 당락에 변화가 예상된다"며 "8번 문항이 기존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든 난해 문항일 뿐 정답은 변함없다는 평가도 있어 일부 수험생들의 반발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특히 생명과학에 응시한 최상위권 학생들의 상당수가 해당 문항의 기존 정답자인 것으로 판단돼 최상위권에서는 등급 상승자보다는 하락자가 더 많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대입원서 제출 대행과 대입전략 평가 등을 담당하는 진학사는 학생들이 작성한 가채점 결과를 바탕으로 실제 등급이 상승하는 수험생들이 분포해 있는 구간은 6~7등급이라고 분석했다. 또 1~2등급에서 등급이 한 단계씩 내려가는 학생이 1,000여명에 달하는 반면 등급이 1·2등급으로 한 단계씩 오르는 수험생은 한 명도 없다고 진단했다.
게다가 이번 파장은 비단 정시 모집에만 그치지 않는다. 현재 수험생들은 가채점 결과를 바탕으로 수시모집의 논술고사·적성고사·면접고사 등의 일정도 진행하고 있다. 복수정답으로 최상위권 수험생들의 경우 오히려 등급이 하락할 개연성이 높아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수시에서 탈락하는 상위권 수험생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일각에서는 소송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일단 김성훈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문항 오류 가능성을 감안해 이의신청 기간을 두는 만큼 공식 정답 발표일 이전의 답은 가안"이라며 "확정되지 않은 답으로 피해를 봤다는 주장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수험생들은 이번 복수정답 인정으로 수시에서 등급 컷 탈락이 발생한 경우나 복수정답의 오류 가능성 등에 대해 소송이 가능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법조계는 승소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 2003년 수능에서 평가원이 복수정답을 인정하자 본래 정답을 선택했던 수험생들이 '복수정답 인정 행위 효력정지 신청'과 '복수정답 인정 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낸 적이 있지만 모두 기각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