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몸뻬바지와 감성에너지
김순진 (놀부 대표, 21세기 여성 CEO 연합 회장)
김순진 (21세기 여성 CEO 연합 회장)
필자는 집에 들어가면 우선 편안하게 갈아입을 옷부터 찾는다. 귀가 후에도 밀린 업무들을 챙겨야 하는 바쁜 일상이지만 편안한 옷을 입고 향기로운 차를 마시는 짧은 휴식시간만큼은 양보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막상 몸과 마음을 생각처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옷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어느날 출근을 했더니 책상 위에 얌전하게 포장한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포장을 풀어보니 알록달록한 색상의 ‘몸배바지’ 한 벌이 나왔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알아봤더니 여직원이 놓아둔 것. 그 여직원은 지난 87년 회사를 설립한 이래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직원이었다. 그녀는 언젠가 무심코 혼잣말로 했던 옷에 대한 내 불평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어머니 옷을 사던 차에 그냥 한 벌 더 샀다”고 수줍게 말했다. 혹시라도 사이즈가 커서 불편할까봐 고무줄을 직접 달아주기까지 했다. 그 소박함이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줬다.
필자는 어떻게 하면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 하다가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써가며 마음을 전했다. 그 순간만큼은 직장과 나이를 뛰어넘어 여직원과 내가 오랫동안 사귄 친구 같은 느낌이 들었다. 10년 정도 직장생활을 같이 했다고 해서 모두가 이런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보화, 디지털화, 산업화된 현대사회는 사람들이 소외되고 연대감을 상실해가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다. 그리고 그 중요한 원인으로 급속한 디지털화를 들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직접적이고 감성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없애고 차가운 벽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디지털화가 큰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디지털은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오히려 핸드폰이나 이메일 등 디지털 기술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더욱 빠르고 편하게 만들어준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디지털 기술을 어떻게 이용하는가다. 차가운 디지털 기기에 사람냄새가 물씬나는 감성을 실어내는 게 필요하다.
주위 사람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보이고, 조금만 더 배려해준다면 이 세상은 훨씬 따뜻한 감성에너지로 가득찰 것이다. 필자는 경영에서도 이 감성에너지를 높이는 방법에 주목하고 있다. 많은 직원들과 직접적으로 대화하기에는 한계가 있기에 홈페이지나 메일을 통해서라도 자주 커뮤니케이션하려고 하며 직원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한 작은 일에도 박수를 쳐주고, 격려하며, 먼저 친절을 베풀자고 자주 이야기한다. 감성에너지가 높아져야 조직은 ‘내부 만족’과 ‘외부 성과’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금도 여직원이 선물해준 몸배바지를 즐겨 입는다. 그리고 차 한잔을 마실 때마다 작은 관심과 친절 하나가 사람의 마음에 얼마나 깊은 감동을 남겨놓는지 놀라고는 한다.
입력시간 : 2004-10-04 1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