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금융시장 외국계 잠식 가속
97년 금융위기후 경영난 틈타 점령
일본 금융시장이 '먹히느냐, 지키느냐'의 갈림길에 놓였다.
장기 불황을 틈타 지난 97~98년부터 일본 금융시장에 손을 뻗쳐 온 외국계 세력이 세(勢)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잇단 합병과 구조조정을 통해 나름대로의 체질 개선을 시도한 일본 금융기관들이 본격적인 수성(守成)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계 세력은 부실 금융기관 인수뿐 아니라 금융업무 중에서도 수익성이 높은 '알짜'시장을 집어삼키고 있어, 일본 금융기관들은 생존을 위한 시장 지키기에 사활을 걸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외국계의 부각이 두드러진 분야는 막대한 수수료 수입을 챙길 수 있는 기업 인수합병(M&A) 중개업무. 선진 금융기법과 오랜 경험을 내세운 외국계 기관들이 아직까지는 굳건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해 일본내 M&A 중개를 맡은 금융기관 가운데 선두 3위까지를 몽땅 외국계가 차지했다고 26일 보도했다.
각각 1, 2위를 차지한 미국계 골드만 삭스와 메릴린치는 조사기관인 톰슨 파이낸셜이 일본내 순위 집계를 시작한 99년 이래 2년째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상위 10위 가운데 순수 일본계는 5위의 도쿄미쓰비시은행과 7, 8위의 노무라증권, 미즈호그룹 뿐이다.
해외 자본에 의한 부실 금융기관 인수도 속속 늘어나고 있다. 지난 25일에는 미국 사설펀드인 론스타가 파산한 도쿄소와(東京相和)은행의 최종 인수자로 선정됐으며, 지난해 파산한 치요다 생명과 교에이 생명 등 생보사들도 각각 외국계 보험사에 인수될 예정이다.
외국 자본이 일본 금융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한 것은 지난 97년 금융위기 이후.
장기불황으로 국내 금융기관들이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한 것을 틈탄 것이었다. 올해는 경기 둔화기로 접어든 미국 시장에서 빠져나온 국제 투자자금이 일본 금융계로 속속 몰려들 가능성이 높은데다, 일본 금융계의 구조조정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외국계의 시장 잠식은 한층 속도를 올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물론 일본계 금융기관들의 미래가 마냥 어두운 것은 아니다. 가령 M&A 중개업무의 경우 지난해 일본계의 시장 점유율은 전체의 29%에 그쳤지만, 지난 99년의 5%에 비하면 놀라운 성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은 일본의 M&A 추세가 국경을 초월한 대규모 M&A에서 국내 업체들간의 중ㆍ소규모 거래로 점차 정착이 되 감에 따라 중개 기관도 국제 투자은행에서 국내 금융기관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지난해도 거래 금액면에선 골드만삭스와 메릴린치 등이 앞서는 반면, 거래 건수면에서는 미즈호, 노무라 등 국내 기관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또 지난해 미즈호에 이어 올해엔 미쓰이스미토모(三井住友), 미쓰비시도쿄(三菱東京), UFJ 등 대형 금융그룹이 탄생, 해외 선진금융기관과 접전을 펼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 금융기관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아직 기대보다 우려가 깊게 배어있다. 덩치 키우기 일색으로 더디게 진행되는 구조조정과 주가 하락으로 인한 경영난 심화가 계속될 경우 일본 금융시장은 외국계 기관들의 독무대로 바뀌고 말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가시지 않고 있다.
신경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