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창간41돌/동갑내기 기업] 두산건설

"외형보다 내길경영" 창업후 無적자 행진우리경제의 발전사는 곧 우리 건설회사들의 발전사와 맥을 같이한다. 1960년 7월 1일 '동산토건' 이라는 상호로 창립한 '두산건설'도 지난 41년간 꿋꿋하게 건설업 외길을 걸으며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었다. 두산건설이 창업했던 60년대는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시절이라 관급공사 대금도 현금으로 받지 못했다. 국고부족으로 공사금액의 일부만 현찰로 받고 나머지는 광목, 쌀, 보리, 밀 등 현물로 수령하기도 했다. 두산건설이 성장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64년 착공한 망우-이문선간 무연탄하치장 공사다. 이 공사 이후 포항제철 인입선 토공 및 기타공사 등을 수주했으며, 70년 연구소를 발족하여 각종 설계를 자체 처리하고 품질을 높이면서 대외 수주가 늘기 시작했다. 이후 두산건설은 73년 1차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인플레와 불황의 여파로 대외수주량이 격감하면서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으나 74년 동양맥주 이천공장 건설에 착수함으로써 충격파를 비켜갈 수 있었다. 이어 불어닥친 2차 오일쇼크로 세계경제는 극도의 불황에 허덕이게 됐으나 재원이 풍부해진 중동 산유국들은 경제개발과 산업구조 개편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으며 국내에는 중동 건설붐이 일기 시작했다. 이때 두산건설은 80년 한해 동안 무려 4건의 대형공사를 수주하며 호황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쥬베일공단내 폐수처리시설공사, 사우디아라비아 킹 칼리드 국제공항 및 부속 지원시설 공사, 아집트의 생의학 연구실 신축공사와 컬프 스웨즈 석유회사 사옥 신축공사 등이 그것이었는데 총 도급액만도 3억달러를 넘어 해외공사 업체로서의 면모를 일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83년에 접어들면서 우리나라의 해외건설 경기는 급격하게 퇴조하였다. 여건의 변화에 대응하여 두산건설은 기술집약형 공사 수주체제를 강화하는 한편 중동지역에서 쌓은 경험과 신뢰를 바탕으로 수주 대상지역의 다변화에 힘을 기울였다. 또 그 동안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던 국내시장 기반 구축에도 가일층 매진했다. 86년까지는 고급빌라 건축을 중심으로 고유모델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주택 건설에 대한 지명도를 높이는데 힘썼다. 90년대에 들어서는 신도시 아파트사업에의 참여는 물론 재개발ㆍ재건축사업에 적극 참여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룩했다. 오일쇼크 이후 건설업이 맞이한 가장 큰 시련은 IMF사태였다. 그러나 두산건설은 두산그룹의 구조조정 정책에 부응하여 남들보다 한 발 앞서 구조조정을 실시한 관계로 그 어려운 시기를 무난히 넘길 수 있었다. 최근 들어서는 SOC 민간투자사업, 턴키공사 및 재개발재건축 등의 기획제안형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건설업과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인터넷 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두산건설은 지난 41년간 단 한번도 적자를 내지 않은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오늘도 양적인 확대보다는 내실 있는 성장을 하고 있다. 최석영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