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비아냥거리된 한국경제(사설)

최근 외국의 경제분석 전문기관과 경제전문신문들이 한국경제에 대해 비관적인 평가분석을 쏟아내고 있다. 안에서 느끼고 있는 것보다 더 예리하고, 안에서 비판하는 것보다 더 신랄해서 관심을 끈다.지난해 미국 유에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가 「한강의 기적은 끝났는가」라고 반문한 이후 한국경제는 뒷걸음질을 거듭해왔다. 비즈니스 위크는 한국경제가 위기에 빠져들고 있는 데도 기업들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한국경제의 우려감이 증폭되고 있으나 정부가 경제의 목을 조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파이낸셜 타임도 경제가 보틀넥에 걸렸는데도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욱 결정적인 평가는 미국 컨설팅회사인 부즈 앨런&해밀턴의 「21세기를 향한 한국경제의 재도약」보고서. 이 보고서는 한강의 기적은 끝났다고 주장했다. 사뭇 충격적인 평가다. 이미 스위스의 국제경영연구소가 한국의 국가 경쟁력이 최하위권으로 처졌다고 평가했을 때 받은 것보다 더 충격적이다. 밖에서 본 한국경제의 전망은 비관 일색이다. 비아냥이 섞여 있지만 귀담아 듣지 않을 수 없는 충고다. ○밖의 충고 귀담아 들어야 불과 얼마전만 해도 한국경제는 장밋빛이었다. 한강의 기적이 세계인의 입에 오르내렸다. 한 세대만에 개발도상국의 모델로 떠올라 한국을 배우자는 찬사를 들으며 우쭐대던 때가 엊그제였다. 불과 몇 해 사이에 아시아에서도 미꾸라지로 전락했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비아냥을 귀담아 듣지 못했다. 국가 경쟁력은 뒤로 갔고 경제는 끝내 위기를 맞았다. 이들이 한국경제를 비극적 시나리오로 구성한 근거의 공통점은 정부규제, 금융의 비효율, 노동시장의 경직성, 기업의 과다부채와 과잉투자, 기술의 낙후와 환경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전략 부족과 역동성의 상실이다. 한마디로 묶으면 우리 경제의 고질병인 고비용 저효율이다. 국제통화기금(IMF)처럼 낙관적으로 보는 극히 일부 분석기관도 낙관의 전제로 금융개혁·부실정리·환율안정 등을 들고 있다. 고비용 저효율은 새삼스러운 문제 제기가 아니다. 모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을 하지 않았거나 애써 외면해왔던데 있는 것이다. 고비용 저효율 문제는 나라 안에서 간단없이 지적돼왔다. 국가적 과제의 첫머리에 놓이기도 했다. 그러나 구호에 그치고 말았다. 지도력의 상실과 실천 주체의 무성의·무책임 때문이다. 금융개혁은 아직 겉돌고 있다. 정부규제 혁파는 말 잔치에 머물러 있다. 노동시장 유연성은 출발 단계에 있으나 저항이 만만치 않다. 과다 차입경영과 과잉 투자가 여전히 곳곳에서 불란을 일으키고 있다. 기술개발은 외면당하고 있다. ○고비용 혁파 미룰 수 없다 어느 한 구석 희망적인 데가 없어 보인다. 제자리에서 맴돌다가 끝내는 국가경쟁력 추락으로 이어졌다. 위기대처능력이 없다보니, 또 위기를 위기로 보지 않으려 하니 진짜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한국이 넛 크래커(호두까기)에 낀 호두에 비유되고 있다. 저비용의 중국과 고효율의 일본사이에 낀 호두알이라는 것이다. 우리 현실을 바로 진단한 것으로 공감이 간다. 설사 비판적이고 비아냥이 섞였다해도 트집거리라고 치부하면서 배척할 게 아니라 약으로 받아들이고 귀기울일만 하다. 한국경제가 위기를 맞고 서서히 침몰하고 있다는 것을 밖에서는 알고 있는데 안에서는 모르고, 알아도 외면해온 사실을 반성하고 충고를 교훈으로 삼아야 할 일이다.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있다.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는 때다. 제2의 도약과 또 한번 한강의 기적이 요구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전과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구조적인 장애요인을 하루 아침에 개선하기란 어렵다. 장기적인 전략을 제시하고 단기 과제를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수순이 중요하다. 지금 겪고 있는 증시·외환시장위기의 해소와 안정부터 손써야 한다. 정부가 솔선해서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깨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 논의는 끝났다. 실천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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