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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10억명 위해서라면 1명 죽여도 괜찮다?

■ 경제학자 철학에 답하다 (스티븐 랜즈버그 지음, 부키 펴냄)


"비교적 경미한 두통을 앓고 있는 10억 명이 있다. 무고한 1명을 죽이지 않으면 이 많은 사람들의 두통이 1시간 동안 지속된다. 대신 그 한 사람을 죽이기만 하면 모두의 두통이 즉시 사라진다. 그렇다면 무고한 한 사람을 죽여도 괜찮은가?"


철학자가 끙끙대며 던진 이 질문에 대해 경제학자인 저자 스티븐 랜즈버그는 과감히 "괜찮다"고 답한다. 희생자의 수가 많고 적음에 따라, 즉 사람의 목숨을 통계적으로 다루는 데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질문을 제기한 철학자 역시 '무고한 1명을 죽여도 괜찮다'라는 동일한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설명은 각자 다르다. 경제학자들이 이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이렇다. "첫째, 10억 분의1이란 확률의 죽음을 피하고자 기꺼이 1달러를 낼 사람은 없다. (자동안전장치를 구입할 의사를 묻는 조사결과같은 사례가 이 사실을 뒷받침 한다.) 둘째, 이런 문제가 충분히 발생하리라 예상되는 개발도상국의 국민 대다수는 흔쾌히 1달러를 내 가며 두통을 치료하려 들 것이다. 셋째, 이를 통해 대개는 10억 분의 1 확률로 죽는 것보다 두통을 더 싫어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10억 명 중 1명을 죽여 모두의 두통을 없앨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호의를 베풀겠다. 두통 환자 1명을 무작위로 선택해 죽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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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도발적인 주장을 서슴없이 펼치는 저자는 이미 '런치타임 경제학''발칙한 경제학' 등으로 경제현상에 대한 다소 대담한 발상을 펼친 바 있다. 전통적인 경제학 틀에 갇힌 사고에서 벗어나 다양한 응용을 선보였던 저자가 이번에는 수학과 물리학으로 가지를 뻗어 우리 삶의 근원적ㆍ철학적 질문에 답을 한다. 앞의 예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도 등장한 돌진하는 전차 선로에 묶인 5명과 1명의 예와 유사하다. 샌델의 경우 공리주의에 대한 현상을 숫자로 치환해 이익을 저울질하는 것에 반박하며 칸트의 의무론적 도덕철학으로 귀결한다. 그러나 저자 입장에서 이는 갑갑하고 공허하다.

랜즈버그는 결과론적 철학을 바탕으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에 근거해 '경제학자의 황금률(Economist's Golden Ruleㆍ약자로 EGR)'을 제안한다. 이 독특한 경제윤리는 승자의 득점과 패자의 실점이 결국 0이 되고 마는 제로섬게임이 아니라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는 '윈윈게임'을 지향한다. 사회 전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이로울 수 있으며 가장 많은 이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가를 비용과 편익 분석으로 따져보는 것이다. EGR에 따르면 헤드폰을 끼지 않고 음악을 크게 틀어 동네사람들을 깨워도 괜찮은 경우는 '그 행위가 매우 중요할 때'뿐이다. 빌 게이츠가 한밤중에 음악을 크게 듣는 대신 1만달러를 내 놓는다면 동네사람들은 평화롭고 고요한 하룻밤보다 두둑한 현찰을 선호할 것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헷갈리고 고민하게 되는 도덕 문제 앞에서 경제학자의 접근법이 도덕적 지침으로 충분히 작용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이 생각의 전환이나 논리적 사고라는 측면에서 신선하다. 1만6,000원.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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