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올해 국정연설에서 한껏 감동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러나 이번 행사는 미국인들이 안고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를 전혀 다루지 않고 있다. 그것은 바로 미국이란 나라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문제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국민들에게 식량, 의약품, 생필품과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그가 이끌고 있는 공화당 정권은 정작 미국민에게 이 같은 혜택을 주고 있는가. 아니다. 이 우파 정권은 경제, 의료, 시민의 권리와 자유, 환경 등 각종 정책에서 뒷걸음질치고 있다.
부시의 국정연설 서두 부문을 언뜻 들으면 이 같은 정책들이 마치 개선될 것처럼 보인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 성장을 촉진시키고, 노인들에 대한 의료 혜택을 확대하고, 환경 친화적인 수소자동차 개발에 12억달러를 지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같은 제안들은 대부분 겉만 그럴싸하게 포장했지 알맹이가 없다. 단골 메뉴인 세금 감면 정책만 되풀이할 뿐 실업률 감소 대책이 없다. 일자리 창출이나 경제 진작책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지금 주정부나 지방정부는 전후 최악의 재정 위기를 맞고 있는데도 부시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눈꼽만큼의 지원책도 내놓지 않았다.
부시는 서민들에게 의약 혜택을 확대하겠다고 말하고 있어 언뜻 보면 괜찮아 보이지만 사실 의료보험인 `메디케어`를 구조조정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는 노인들의 의료복지를 개선시키기는커녕 악화시킬 것이다.
부시는 또 수소 자동차 개발 지원을 통해 형편없는 환경정책을 만회하고자 했다. 20~30년후 수소 자동차가 개발되면 환경 차원은 물론 경제적인 차원에서도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공화당 권력자들이 하나같이 이 같은 차세대 연료 개발에 미온적이기 때문에 부시가 이 같은 정책을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 극히 미지수다.
사실 연료 효율을 급격히 향상시키는 차세대 연료 개발에 따른 혜택은 막대할 것이다. 자동차 소비자에게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공해를 줄이고 온실효과 방지를 위한 우리의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시킬 것이다. 당연히 외국으로부터의 원유 수입도 줄어드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하지만 부시는 연설에서 이 같은 환경정책의 혜택에 대해서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부시 정부는 미국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미국의 일방적인 이라크 공격 등 군사적 우위에 따른 독자 노선 정책은 세계를 불안과 극단으로 치닫게 할 것이다. 국내 정책에서도 무조건 세금만 줄이면 된다는 식의 경제정책은 두 가지 측면에서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다. 먼저 국가 재정을 고갈시킴으로써 사회 복지 정책을 어렵게 만들고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에 중추적인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를 어렵게 만들 것이다.
전쟁 운운하며 중요한 국내 경제ㆍ사회 현안들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대부분 미국인들은 전쟁을 원치 않는다. 이미 지방 정부 차원의 세금은 치솟고 있고 지원은 축소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서, 그리고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은 해외에서 현명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국내에서는 공정하게 재원을 분배해야 할 특별한 임무를 띠고 있다. 이 같은 일은 우파 정권에게 쉽지 않은 과제다. 부시가 국정 연설에서 내용보다는 애국심과 동정에 호소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부시의 미사려구를 찬찬히 뜯어보면 그가 현 정권을 유지시키기 위해 혼신을 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다수 미국인들이 부시의 정책을 온전히 이해한다며 혐오감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보브 허버트(뉴욕타임스 컬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