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 산책] 老부모에 효도 검진을


의사 생활을 한 삼십년 하다 보니 나름대로 환자와 보호자의 심리상태를 파악하려는 버릇이 생겼다. 아무래도 어디 이상이 있는 것 같다며 오신 노인 환자 곁에 같이 온 자식들의 표정을 보고 그 생각을 짐작해보면 나이 들면 남들 다 그러는데 유난스럽게 무슨 검사가 필요하다 하시느냐며 건강 염려증이라고 짜증이 곧 터질 것 같은데 눈치 없이 비싼 검사를 권했다가는 돈만 아는 의사로 몰리고 노인들을 현혹시킨다며 괜한 화풀이를 당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자식에 짐 안되려 건강 걱정 다행히 노인 환자가 경제권을 가진 경우는 자식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하자는 검사 다 하시니 좀 낫지만 온전히 자식들이 병원비를 감당해야 하는 경우는 "며칠 약 드셔보고 안 되면 검사하시지요" 하는 것이 전쟁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이다. 간혹 수일 이내로 노인 환자가 혼자 다시 오셔서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검사 다 하신다고 "애초 걱정하시던 병 외에 온 김에…"라고 하며 "이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검사 모두 해줘요" 하는 경우는 의사가 복 터진 날이고 비슷비슷한 친구분들을 동반하고 오셔서 서로 강권해가며 검진을 하시는 노인들의 표정은 병이 발견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보다 내가 건강해야 자식 고생 안 시킨다는 나름의 철학으로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밝은 표정이어서 우울증 치료에 검진이 좋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반대로 정밀검사가 필요한 상태인 것 같은데도 다음에 준비되면 온다고 자식 손에 끌려가듯 가시고 다시는 오지 못하는 분들도 있어 궁금해 짬짬이 전화를 해보는데 이럴 때면 그저 나이 먹어도 꼭 돈은 좀 있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다니시던 노인들 중 이제 치매에 걸려 병원에 오셔서 한참 앉아서 주무시다가 오신 목적을 잊고 그냥 가시는 분도 있고 가진 돈이 많지 않아 자신은 검사 못하고 젊은 아들딸만 이것저것 검사시키려 보호자로 따라오시는 노인을 보면 기다리시는 중에 검사 몇 가지 그냥 해드리기도 한다. 남의 집에만 생기는 일이 아니다. 내게도 팔순 가까운 노모가 계시는데 그래도 나름 정기적으로 필요한 검사는 다 해드리고 있지만 만족하시는 것 같지는 않다. 어버이날 전 갑자기 동생 집에 가신다기에 둘러보러 가시나 보다 했는데 전화로 이비인후과를 갔더니 청신경이 모두 망가졌다고 했다며 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흥분된 어조로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수일 전 잠깐씩 어지럽다 하시며 뇌에 이상이 있는 것 아니냐 하셔서 뇌 MRI 검사 하신 것 얼마 안 되고 아무 이상 없고 귀에 이상이 있어도 일시적으로 그럴 수 있으니 조금 지켜보시자고 하고는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청신경이 망가졌다면 귀가 아주 안 들리셨을텐데 내가 그걸 몰랐나 하고 다시 전화 드렸더니 귀는 무지 잘 들리고 귀 때문에 어지럽다더라며 자신의 생각대로만 말씀하신다. 용돈 보다는 정기 검진 받게 평소 딸이 천하의 명의라고 시도 때도 없이 자랑하셔서 민망하게 하시던 노모라 내 말을 안 믿으시고 다른 의사에게 가셨다는 것이 내심 분하기도 했지만 짐작해보건대 머리 걱정하실 때 머리 검사하자고 얘기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지 싶다. 검사 하신 지 얼마 안 됐고 갑자기 머리 속에 일이 생겼을 리 없으니 "많이 어지러우면 약을 좀 드릴까요"라고 상냥하게 했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을 "아 괜찮다는데 왜 안 믿고 그러세요, 물이나 많이 드세요" 한 것이 무척 서운하셨던 모양이다. 아마 내가 보호자로 그 병원에 갔더라면 짜증 제대로 난 얼굴로 서있었을 게다. 오월은 가정의 달, 효도의 달이기도 하다. 꽃 달아드리고 용돈 드리는 것보다 앞으로 곁에 계실 날이 얼마 되지 않을 부모님 "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하며 검진하러 가시자 하면 "이 나이에 검진은 뭘" 하시면서도 정말 기뻐하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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