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의 핵심 개혁과제의 하나인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방지방안이 1년 간의 논의끝에 최종 윤곽이 나왔다. 당초 출발 때의 지향점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 내지는 산업자본의 금융지배차단이었으나 결과물은 산업자본의 금융지배에 따른 부작용 방지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수정, 완화됐다. 현실적으로 산업자본의 금융자본지배를 원천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한데다 보험ㆍ증권ㆍ투신 등 제2금융권은 대기업 등 산업자본이 이미 진출해 있는 상황에서 소유를 제한할 경우 사유재산침해와 금융시장혼란 등 더 많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의 이 같은 방안에 대해 시민단체 등은 `알맹이 없는 로드맵`이라며 참여정부의 재벌개혁이 후퇴했다고 비판한 반면 재계는 은행 소유제한을 풀지 않아 결과적으로 외국자본의 금융기관지배를 방치하고 있다고 모두들 불만이다.
◇산업ㆍ금융자본간의 방화벽 설치=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에 따른 가장 큰 위험은 대주주인 산업자본의 부실이 금융기관에 고스란히 옮겨질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기관의 부실은 다시 예금자 피해로 이어진다. 그동안 재벌그룹의 금융회사가 부실해 질 경우 재벌그룹은 그 손실에 대해 거의 책임을 지지 않았고 결국 공적자금투입으로 이어져 국민부담을 키워왔다. 정부는 이에 따라 재벌 등 산업자본의 금융기관 소유는 계속 허용하지만 금융기관을 소유할 경우 비용은 늘리고, 편익은 최소화함으로써 산업자본의 금융자본간의 분리를 자연스레 유도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금융기관이 대주주에게 제공하는 여신을 줄이는 동시에 대주주와의 거래분에 대해서는 대손충당금을 더 많이 쌓도록 했다. 또 금융업 진출은 계속 허용하되 부실한 산업자본이 금융기관을 인수하거나 설립하지 못하도록 대주주의 자격심사제를 모든 금융회사로 확대하고 자격 요건도 강화하기로 했다.
◇산업자본의 사금고화방지로 동반부실차단=자산운용상의 제약을 가해 금융기관이 대주주인 산업자본의 자금지원통로로 악용되는 것을 막는다는 구상이다. 우선 자산운용한도 설정기준이 자기자본으로 일원화된다. 자기자본을 확충하지 않고 고객의 돈인 자산을 증가시키는 방법으로 계열사 여신을 늘리는 편법을 막겠다는 것이다. 보험업의 경우 대주주 및 자회사에 대한 신용공여한도는 자기자본의 40% 또는 총자산의 2% 가운데 작은 금액으로 제한돼 있는데 앞으로는 이 2%룰이 삭제된다. 대주주 발행 주식의 금융기관 취득한도규정도 총자산기준은 없어진다. 이에 따라 자산운용한도를 초과할 경우 초과액에 대해 20%까지 부과하는 과징금제도가 은행ㆍ보험업에서 모든 금융기관으로 확대된다.
부실한 산업자본의 금융업 진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장치도 마련된다. 금융회사를 설립할 때 적용되는 출자자 자격요건이 강화돼 부채비율 200% 넘는 산업자본에 대해서는 금융업 진출을 원천봉쇄된다. 부채비율기준은 경과기간을 두고 제조업 평균비율인 135%(2002년기준)수준으로 강화된다. 특히 대주주인 산업자본이 부실징후를 있을 경우 금융당국이 해당 금융회사에 대주주에 대한 신용공여와 주식취득을 금지할 수 있도록 산업ㆍ금융자본간의 부실이전을 사전에 차단한다.
◇핵심 개혁과제는 대부분 퇴보=당초 정부는 외환위기와 대규모 공적자금투입의 큰 원인을 `제2금융권의 재벌 사금고화`로 보고 그 해결방안으로
▲금융계열 분리청구제
▲제2금융권 대주주 자격유지제
▲재벌 계열 금융회사의 계열사 지분의결권제한 등의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핵심과제중 하나인 대주주 자격유지제는 로드맵에서 완전히 빠졌다. 경제여건의 변화로 부채비율 등 출자요건이 바뀔 수 있는데다 산업자본 견제장치가 자칫 비 재벌권 대주주에게 경제적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게 재경부의 설명이다. 신제윤 금융정책과장은 “자격유지제가 도입되면 자격에 미달한 대주주에 대해서는 주식매각명령을 내려야 하지만 주식매각과정에서 금융시장혼란을 야기할 수 있고 일부 금융회사는 주식이 팔리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또 다른 핵심 과제인 `금융 계열분리청구제`도 도입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계열분리청구제는 중장기과제로 추진하고 대신 이행의 강제성이 상대적으로 약한 `분리권고제`를 대안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것도 올해 도입여부를 최종결정한다는 방침이어서 계열분리청구제는 사실상 물건너갔다는 분석이다.
<권구찬기자 chans@sed.co.kr>